쇠퇴와 부흥(현대종교 탁지원소장)
“현대종교의 부흥은 교회의 쇠퇴, 현대종교의 쇠퇴는 교회의 부흥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단 부흥의 본질적 근원은 교회당과 우리 목회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들의 심각한 돌이킴 없이 이단교육만으로 과연 이단들이 쇠퇴하게 될까요? 종국에 교회는 이기겠지만 교회당은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건물을 성전으로 절대시하며,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절대시하는 일은 사라져야 할 것이고요. 교회와 목회자들이 더욱 건강해져서 현대종교가 덜 바빠졌으면 합니다.”
– 6월 목포극동방송 주최 이단 세미나 후 어느 목회자의 편지 내용 중 일부 –
본질
과학 작가 이은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혹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 믿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많은 것 중에 어떤 것이 사실이고, 진실 또는 거짓인지, 어떤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떠한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선 경험과 지식 등이 필요 하다는 거다. 보는 것은 연습이 필요 없지만 읽어내는 것은 분명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굳이 신학자들의 해석이 아니어도 신천지처럼 자가당착과 오류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그 뜻을 제대로 간파하고 충분히 읽어내기란 어렵진 않다. 귀하게 허락하신 말씀의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중심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면 각자의 삶에 그 말씀이 천천히 스며들 것이다.
문제는 말씀에 따른 삶과 행동, 그리고 삶의 방향이지 싶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교회는 물질 축복은 성실한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에서 천대받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을 섬기는 빛과 소금이 되라 했지만 교회는 세상의 더러운 죄를 들어와서 씻으라 했다. 예수는 집도 절도 없이 동산과 벌판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지만 교회는 성전을 짓고 찬란하게 치장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 가르쳤다.
몇 번 이 지면에 소개했던, 신앙과 세상 중간에 서서 평생을 고민, 씨름하며 살고 있는 이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더 의미심장하다. 만일 예수를 따르는 삶이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삶임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이뤄지는 일이라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믿는 이들의 믿음이 예전과 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말씀을 정확히 읽어낸다는 것, 그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단들과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교회들의 고민과 기도가 행동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이단 피해자들이나 우리들 세상 이웃이 더 열심이고, 또 귀한 실천과 결과물을 얻고 있어서다.
국가는 어떠한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 허둥지둥 대처했던 정부와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하길 꺼리는 이기적인 이들의 모습은 또 다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세월호 때와 별반 달라진 것도, 기대할 것도 없어 보인다.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때 많았으나 이젠 사건들을 겉으로만 바라보며 문제를 풀어가지는 않을 거라 믿었고, 본질을 읽어내는 연습을 수없이 해왔다 싶었는데 여전히 파고들어야 할 문제에 국가와 사회, 그리고 종교 등은 여전히 자유롭질 못하다.
사건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더 연습하고 경험하며 부딪히며 어려움들을 감내해야 할지. 지금 당장의 문제만 해결하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본질과 의미에 근접할 수 있는 노력과 행동이 건강한 사회와 종교를 일궈가는 기초가 되리라 믿는다. 그것이 삶과 인생, 우리들 몸담고 있는 각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지 싶다.
*도로에 작은 돌덩이가 하나 박혀있어 계속해서 사고가 나고 있다. 사고가 나면 세상 사람들이나 이단들도 치료하고 돕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들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해야 할 더욱 중요한 일은 사고 원인인 돌덩이를 뽑아내어 다시는 그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일이겠다.
로앤처치
언론을 이야기해도 이단 문제가 빠지질 않는다. 이단들이 운영하는 언론들이나 이단들의 유관 언론들, 그리고 이단은 아니지만 이단들을 옹호하는 언론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이번 호 Q&A 참고). 믿음과 신앙으로 언론을 운영하는 이들과 기독교언론의 소명을 갖고 정말 언론이 필요해서 어렵게 사역을 끌어가는 언론들도 많지만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득을 꾀하기 위해 운영되는 언론의 문제는 작금의 이단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이단옹호 언론의 압권은 「로앤처치」(현 「법과교회」, 발행인 황규학)다. 이 곳은 이단 사역자들의 최대의 적이며 더불어 한국교회의 적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기독교(인터넷) 언론인가 싶기도 하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언론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많다. 교회들의 사건, 사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문제 해결의 의지를 불태우나 그로인해 교회의 논란과 분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로앤처치」가 교회에서 겪을 수 있는 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진 모르겠으나 그간 얄팍한 법적 지식으로 교회의 분란을 더 키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평소엔 언론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여전히 먹이를 찾아나서는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다 일단 먹잇감이 나타났다 싶으면 앞, 뒤 가리지 않고 특유의 기동력을 발휘하는데 있어서는 찬사를 보내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그곳을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라.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분열케 하고 위태롭게 함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나 이인규 권사(네이버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카페), 그리고 정윤석 기자(「기독교포털뉴스」) 등과 같은 이단 사역자들과 이단대처 언론들엔 수위가 조금 더 높은 비난과 음해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이인규 권사 같은 경우는 지난 번 은혜로교회의 폭력을 겪은 상황에서도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여 할 말을 잃게 했다. 사실 왜곡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필자와 선친을 포함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때마다 진실이지 않은, 또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단들이 공격 소재로 삼을만한 내용들을 마구잡이로 제공하고 있다.
황씨는 지금껏 수많은 이들에게 소송을 제기했고, 또 역으로 소송을 당해왔다. 그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결과 그는 성추행, 절도 미수 등의 전력을 포함해 수많은 전과를 달고 있다. 그런 그가 부끄러운 과거는 어디에다 묻어두고 남들을 비난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지경이다. 「로앤처치」를 보면 적반하장이라는 단어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아픈 교회나 상처 입은 이들의 회복과 치유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일하는 그를 언론인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간 본지는 여러 비난과 음해를 감수해왔지만 그 일들이 이단들을 이롭게 하고, 교회들의 분열을 꾀하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다른 일들은 조금 제쳐주고라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단 언론이나 이단옹호 언론들의 쇠퇴는 종국엔 이단들의 쇠퇴가 되고, 한국교회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그들은 본지의 불매운동을 전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바 문을 닫아야 할 곳은 본지가 아니라 「로앤처치」다. 서글픈 것은 아직도 그 언론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고, 앞뒤 가리지 않은 채 그들의 기사들 중 보고 싶은 것들만 골라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같은 비난과 상처를 주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이단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지만 교회 구성원들이 그 같은 언론에 동조한다면 이단옹호의 소품 노릇이 될 수밖에 없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로앤처치」같은 이단옹호 언론들로 인해 열심히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교계 언론들이 같이 욕을 먹기도 하기에 이단과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이단 언론, 특히 이단 옹호 언론과의 싸움에도 관심을 갖고 구독이나 광고 금지, 불매 등 전면적인 행동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문을 닫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로앤처치」같은 이단들의 소망 때문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목회자의 이야기처럼 본지가 사라져야 할 시점이 오면 알아서 조용히 물러서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쇠퇴로 예수가 살고, 본지의 쇠퇴로 교회가 살길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끝)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