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철목사와 임헌원목사의 비판에 대한 반박(2)

  • 2월 03, 2016

십자가와 부활은 모두 구속적 사건이다!

 

     

 

바른믿음(임헌원 목사, 정이철 목사 등)에서 주장하는 여러 주장 중 가장 핵심적 주장은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가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속의 완성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연구를 하려면 개인적인 감정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먼저 정통신학과 성경을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또한 상대방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정상적이며 건전한 정통신학적인 견해를 무모하게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스스로 깨닫기 바란다. 이 분들의 주장을 가만히 들어보고 있으려니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산 소망이 되는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 춘천 한마음교회의 견해와 조직신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보자

    

 

십자가와 부활은 모두 구속적 사건이다.

    

바른믿음 측에서는 십자가만 구속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구속은 십자가로 완성되었고, 그 증거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부활은 구속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십자가로 완성된 구속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 또한 구속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구속적 사건으로 보고 바른 믿음 측은 십자가만 구속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믿음 측과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와의 결정적인 신학적 견해 차이이다.

  

춘천한마음교회의 제자훈련 시리즈 책자를 보면 머릿말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즉 춘천 한마음교회의 목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음교회는 죽으심과 부활을 함께 증거한다.

 

  한마음교회는

1990년 8월20일에 창립된 기독교 한국 침례회 한마음교회는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마태복음 28:19-20) 

 

김성로 목사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 3-4절에 복음의 핵심 사건으로 십자가 부활을 선포했다.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하고( 6:23 “죄의 삯은 사망”), 반드시 피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15 17절에서 말한다.따라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활이 전제된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크거나 중요하다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같이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다. (김성로,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 도서출판 요단. pp.25)

  

 

김성로 목사는 분명히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구속적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바른믿음 측은 김성로 목사가 십자가로 구속이 완성이 되었는데 부활까지 구속적 사건이라고 하니 십자가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바른 믿음 측이 구속의 완성으로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희생제물로 돌아가신 십자가의 대속을 부정한다면 그곳은 이단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만이 구속의 완성이며, 부활을 구속이 아닌 별개의 사건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활이 구속적 사건이며 구속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여러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1.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이승구 교수가 국제신학에 기고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를 보면 부활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객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근거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 부활은 십자가의 궁극적 구원적 의미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우리의 구속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부활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명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구속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박형용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박형용 교수가 리차드 개핀 박사의 부활과 구속 추천사 일부 중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부활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사건이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4:25)”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구원 문제를 논할 때 예수님의 죽음을 그의 부활보다 더 강조하여 다루었다. 예수님의 죽음을 속죄(atonement)의 성취로 강조하여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잘못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는 부활에 대한 강조가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에서 구속의 성취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대치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Gaffin 박사는 바울 신학의 중심주체인 부활을 성도들의 구원과 결부시켜 다룬 다음 예수님의 부활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3. 한천설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한천설 교수가 목회와 신학 2000 4월호에 죽은자의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기고한 글 일부이다.

(5)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아직도 여전히 죄 가운데 에 있다(17).

다섯 번째의 바울의 논리에서 이제 우리는 하나의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여전히 죄 가운데에 있다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통해서 바울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의 의미가 신자들이 그의 죄 된 성향을 정복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신학적으로 그럴듯하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특히 그 다음절 바울이 너희 죄 가운데에 라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특징짓는 죄 되고 저주받은 상태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도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죄 되고 저주받은 상태에 동일하게 머물고 있다는 의미이다.어떤 사람은 여기서 강하게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부활과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는데, 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아직도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도대체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이러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임이 갖는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말하기를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상관없이 여전히 그들의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만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구속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리스로의 부활이 그의 구속적 죽음이 갖는 효과에 대한 단순한 증거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해진 주님의 구속사역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구속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죽음은 그의 부활이 그런 것처럼 동일하게 그가 승리한 사건으로 보여지며, 부활 또한 그의 죽으심과 동일하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부활을 단지 구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우리에게, “부활 없이는 어떠한 죄의 용서함도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4:25참조).

이제 우리는 이 두 사건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 둘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이런 상호보완적 측면에 대해 Ramsey는 다음과 같이 잘 정의했다. 사도적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부활인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만으로도 아니고 부활만으로도 아니며, 또한 전주(prelude)로서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나 마무리 연주로서의 부활이 아니라 복음에 실제적인 만큼 세상에 도전이 되는 그러한 방식에서 두 가지의 종합인 것이다“(The Resurrection of Christ, p. 19).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이중적 관점은 바울 사고의 모든 관점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사건으로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대칭시켜서는 되지 않지만,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는 부활을 통하여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이것이 17절에서 바울이 성도의 구원과 관계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인 것이다.

  

4. 권연경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권연경 교수가 목회와 신학에 부활은 복음이다에 기고한 글 일부이다.

우리가 부활의 하나님을 믿어 의롭게 된다면, 부활이 없는 칭의란 존재할 수 없다. 칭의를 죄 용서와 동일시하고, 이를 전적으로 십자가의 효과로 간주하는 통상적인 경향과는 달리, 바울은 칭의가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예수 우리 주,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죽음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셨느니라( 4:25). 물론 이는 십자가 죽음이 죄 용서를 위해, 그리고 부활이 칭의를 위해 필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죄 용서와 칭의가 나누어질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와 부활도 그러하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칭의에는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신학 교수인 리챠드 개핀(Richard B. Gaffin, jr.) 박사 논문 부활과 구속에서도 엄격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닌 그의 부활(즉 승귀)이 단번에 이룬 구속의 성취를 완결짓는 것이다 즉 부활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신 죤 머레이(John Murray) 그가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강조하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죄가 아직도 초절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정죄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루이스 벌콥(Berkhof) 더욱 중요한 일은 구조상의 한 요소인 부활을 구속사역의 핵심, 나아가 복음의 핵심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신학자들은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구속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결론은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 또한 구속적 사건으로 보는 김성로 목사의 주장은 성경적인 주장이다.십자가만 구속적 사건이라는 생각으로 부활을 강조하는 김성로 목사에 대한 비방은 역으로 부활을 구속적 사건이 아님을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신학이다. 바른 믿음 측은 십자가에서 구속의 완성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심지어 부활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이야 말로 부활을 부정하는 이단적 주장인 것이다.  

  

(정이철목사의 바른 믿음에서 발췌한 글) 

 

성경에 무식하여 부활을 모르면 구원받지 못할까? 아니다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설령 의심이 많아 부활을 믿지 못한다 해도 십자가의 죄사함을 확실히 믿으면 구원받는다.[중략] 김성로는 십자가와 부활을 동전의 양면 같다라고 말한다. 그가 복음의 개념을 모르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주는 복음이나, 부활을 믿는다고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이것은 부활을 십자가위에 두려는 김성로 목사의 무지와 억지이고, 기독교 복음을 왜곡하는 거짓된 논리다. (바른 믿음 사이트, 김성로는 십자가 깨닫지 못한 이단스러운 목사 글 중에서)

  

 

김성로 목사가 말하는 부활은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구속적 사건이라는 것이고, 그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확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로 목사의 부활 강조는 결코 십자가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한다는 것이다(김성로,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 도서출판 요단. pp.26). 그리고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절대로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즉 지금 살아계신 부활의 주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이다.

  

 

5. 무엇보다도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남을 무작정 비판하고 정죄하기 위하여 성경말씀까지 부정하는 사람이 된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이 될 것이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고전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