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은 천국에 가지 못했다?

  • 6월 14, 2016

                                                세례요한은 천국에 가지 못하였나?

 

                                                                                                                                                  이인규

 

1.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

 

몇몇 이단들이 본문을 인용하며 세례요한이 천국에 가지 못하였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하여 천국에 있는 자 중에서 가장 작은 자도 세례요한보다 크므로 세례요한은 천국에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가 메시야인지를 묻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서 확인하였다는 것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므로 배도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JMS(정명석집단), 신천지등과 같은 이단이라는 사실이다. 혹간은 아무도 이러한 이단집단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와 같이 작은 의문점을 문제 삼는 것이 이단들의 수법이다. 오히려 그들은 먼저 조그마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며, 기존교회의 해석이 모두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촉이 바로 그들에게 미혹되는 시작점이 되어진다. 그리고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단들이 세례요한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노리는 고의적인 목적이 숨어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나 부분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먼저 우리는 그 성경구절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먼저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성경구절만을 부분적으로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앞뒤 문맥을 충분히 파악하여야만 한다.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마 11:11은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와 세례요한의 우월성을 비교하려는 뜻이 아니다. 물론 성경 위 구절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하여도 세례 요한은 천국에 간 것이 분명하다.

 

1) 성경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신구약의 모든 사람들은 여자가 낳았으며,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가장 모든 사람들 중에서 큰 인물이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물이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인가?

 

2) 11장9절을 보면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만약 세례요한이 천국에 가지 못하였다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모두 천국에 가지 못하였다는 결론이 될 것이다.

 

3) 세례요한은 옥에 갇혀 있었으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메시야로서의 확증’(11:2-3)을 질문하기 위하여 찾아왔던 것이다. 이것을 이단들은 요한이 배도를 하였다고 왜곡을 하지만, 결코 배도나 의심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와서 그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하여 줄 정치적인 메시야로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침묵을 하였으며, 다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4-5)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이사야서를 인용하며, 예수께서 구약성경이 예언하는 그 메시야라는 것을 확인 시켜준 것이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5-6)

 

4) 본문은 더 나아가서 복음의 중요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여야만 한다. 세례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물이었다. 예수님은 말라기 3:1을 인용하면서 세례요한을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로 설명하고 있다. 즉 세례요한을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사명자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마 11:11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국에 있는 자 중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현재 지상에서 사역하는) 세례요한보다 더 크다.”

 

즉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음을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위대함을 역설하면서 그와 함께 천국의 가치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단들은 세례요한은 구원을 받지 못한 배도자라고 주장을 할까? 그런 주장을 하는 이단들은 항상 다른 이단에서 분열되어 나온 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통일교에서 나온 정명석, 전도관에서 나온 이영수, 조희성, 이만희등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신들이 처음에 몸담고 있었던 곳을 잘못된 이단으로 비난하면, 자신도 함께 이단이 되므로 자신이 선택하여 몸담고 있던 곳을 이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2) 자신들이 빠져나온 이단들의 교리가 자신들의 교리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그들을 무조건 이단이라고 배척할 수 없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된다.

(3) 그렇다고 하여 자신이 앞에 몸담고 있던 곳을 비난할 수 없다면, 교인들이 그곳에 대해 원조격이라는 관심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이며 교인들이 호기심으로 그곳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4) 자신들이 빠져나온 이단 교주를 예비자이며 사명자인 세례요한이라고 주장하면, 자신을 메시야라고 할 수 있거나 혹은 더 높은 위상으로 신격화 할 수 있으므로 효과적이 될 것이며, 세례요한이 배도자로서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함으로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배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마 11:12는 난해한 성경구절로 유명하다. 이단들은 이러한 난해한 구절을 통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전용적인 수법이다.

 

개역성경은 ‘침노’라고 하였고, 공동번역은 ‘폭행’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Violence’(폭력)으로 번역하였고, NIV 영어성경은 Advancing(진입, 전진)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동일한 성경구절이 누가복음 16:16에 나오므로 우리는 그 구절의 의미를 비교하고 짐작할 수 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

 

어떤 학자들은 마 11:12의 본문을 천국의 진입이 폭력적인 방편에 의하여 침노 당함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하였으며, 어떤 학자들은 천국은 열렬한 노력으로 취한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 본문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예수와 세례요한은 폭력이나 노력같은 힘으로 천국을 얻은 사람들이 된다. 세례요한은 공격을 시작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세우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실제적인 폭력과 같은 힘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자들은 열성당원(Zealots)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폭력으로 실천되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성경은 그러한 폭력을 조장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 또한 실제적인 폭력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 폭력을 힘으로 번역할 수 없으며, “적극적이며 역동적인 열심”으로 번역한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는 “비아조”인데, 마태복음은 ‘침노를 당하나니’(수동태)로 번역되었고, 누가복음에서는 ‘침입을 한다’(중간태)고 번역되었다.

어느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평행구절과 비교하여, 마태복음의 ‘비아조’를 수동태가 아닌 중간태로 해석하여, ‘침입을 당하다’가 아니라, ‘전진하다, 나아가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 있게 나아가고 있다. 힘을 쓰는 사람들이 천국을 차지한다”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NIV 영어성경은 그와 같이 번역되었다.

 

사실 마태복음에서도 ‘빼앗느니라’라는 단어 ‘할파조’도 물론 ‘잡다, 취하다’는 뜻이 있지만, 성경에서는 ‘이끌려가다’는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2:12, 14에서 천국으로 이끌려 갔다고 말하였을 때에 그 단어가 ‘할파조’인 것이다. 또한 살전 4:17의 휴거를 의미하는 ‘구름으로 끌려가다’는 단어도 ‘할파조’이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야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하게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며 천국이 보장된 선민이었다. 그러나 세례요한 이후 천국은 침노하는 자, 즉 적극적인 자, 유대인들의 유전과 전통과 같은 형식주의를 깨트리는 자, 하나님의 복음으로 돌아오는 회개한 자, 자발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자만이 취할 수 있으며, 그들이 천국으로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천국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가 아니다. 천국은 이기는 자들의 소유가 되며,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믿음으로 고난과 핍박을 이겨가는 자들의 것이다.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던 수동적인 천국은 이제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 땅위에 세워졌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자발적인 믿음으로 선택을 받아 이끌어지는 사람들에 의하여 완성되어질 것이다.

 

[공동번역]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표준새번역] 세례(침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현대인의성경]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

 

[KJV]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eth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NIV]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본문은 구약의 율법과 복음의 가치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본문의 키포인트는 구약에서 가장 뛰어난 선지자적인 인물이자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요한을 기점으로, 이제 천국은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메시야의 도래와 함께 복음의 시대를 맞이하여 믿음으로서 천국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복음의 시대에서의 하나님나라의 가치성을 구약시대의 세례요한과 비교하고 계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