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로마서 1장3-4절의 올바른 해석

  • 3월 02, 2016

                                          로마서 13-4절의 올바른 해석

  

 

                                                                                                                                        이인규

  

 

필자는 그동안 부활의 중요성에 대한 조직신학자들의 견해, 성경 구절, 그리고 히브리서 9장의 하늘 성소에 대한 중요주석들의 해석을 올렸다. 또 캘빈의 기독교강요가 말하는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올렸다. 이번에는 로마서 13-4절에 대한 중요주석들의 견해와 필자의 견해를 올리고자 한다.

  

 

성경적인 토론과 신학적인 토론은 흥미있는 것이며, 공부가 되는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인 토론은 하지 못하고 무조건 인격적인 비난을 하는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 없다. 특히 필자가 돈을 받고 누구를 도와준다고 하든지, 교활하다는 표현, 그리고 회색분자라고 하는 표현까지 나타나고, 게다가 우리 이단연구 모임을 사단의 회라고 표현하는 일까지 있었다. 과연 그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인지 그 인격조차도 의심스러우며, 참으로 신학적인 지식과 함께 성경적인 지식도 부족한 사람들로 생각된다.

“그들의 눈은 부활을 강조하면 이단이고 사단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떤 영을 갖고 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단 한번도 부정해 본적이 없으며, 십자가와 하늘성소에서 두 번 드려진 제사라는 말을 단 한번도 꺼낸 적이 없다. 그러한 필자의 글이 발견된다면 언제든지 지적을 해 주기 바란다. 건전한 토론이란 상대방의 글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근거를 정확히 제시하며 비판을 하는 것이며,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욕설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서, 남의 글을 조작하든지 매도를 하는 것은 성령과 관계가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의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필자의 글을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 카페와 예레미야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하여 2곳에 올려왔으며, 다른 곳에 있는 글은 필자가 직접 올린 글이 아니다. 필자는 신학자들의 사진을 올리거나 필자의 직분이나 어느 특정한 소속단체의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캘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부의 몰지각한 사람들은 캘빈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심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벧전 1:3).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등장한 것처럼, 죽음을 이긴 우리 신앙의 승리 역시 그의 부활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성경주석들은 우리가 성경 연구를 할 때에 필요하다. 다만 성경난해한 구절에 대해서 몇가지 견해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간혹 어떤 성경 구절이 난해하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몇가지 해석으로 대립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다양한 해석은 견해적인 차이로 인정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로마서 13-4절에 대해서 연구하여 보자

  

 

1: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 육신과 성결의 영

  

 

본문에서 육신과 성결의 영으로 대조하려고 하는 것은…. 인성과 신성의 관점, 육체적인 관점과 영적인 관점, 인간적인 관점과 신적인 관점 등으로 대조시킨다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이 문제는 크게 세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 본문에서 육신과 성결의 영에 대해서 인성과 신성으로 해석하면 간단하고 편리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오류가 있다. 공동번역이 그렇게 해석하였는데, 이렇게 해석하면 육신은 곧 인성, 영은 곧 신성이라는 기독론적인 오류가 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인성은 육체라는 주장과 신성은 영이라는 주장, 곧 영과 육을 신성과 인성으로 분리시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성경은 그렇게 간단하게 분리를 시키지 않으며,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하나의 인격으로 연합되어 분리되지 않는다.

  

둘째, 육신을 예수의 육체로, 성결의 영을 예수의 영(영혼)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킹제임스성경이 이러한 해석으로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 “spirit”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예수의 내면적인 영(영혼)이 예수를 부활하였다는 내용이 되므로 이상하며, 예수의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것이 되며, 어차피 일반 사람의 경우에도 영(영혼)은 죽지 않는다. 더욱이 그렇게 해석한다면 롬8:11의 성령이 예수를 살리셨다는 내용과 달라지게 된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셋째 육신과 대조되는 성령, 즉 하나님의 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령은 프뉴마 하기온이며, 본문은 프뉴마 하기오쉬네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그 차이를 다르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개역성경은 성결의 영으로 번역하였고, NIV영어성경은 “Spirit of holiness”로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과 현대인의성경은 거룩한 영으로 번역하였다. 그렇게 해석하게 되면, 앞의 롬8:11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엡1:20과도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되므로 조화를 이루게 되며, 가장 보편적인 견해이다.

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혹간은 본문에 대해서 부활 후에야 비로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해석이다. 예수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이단일 것이며, 특히 지방교회와 같은 이단들이 그러한 해석을 한다.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또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에(3:17, 1:11)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변화산(9:7, 17:5, 9:35) 에서도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더욱이 마귀조차 예수의 초기공생애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을 알아 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8: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참고: 3:11, 5:7, 4:41)

먼저 이 로마서14절의 본문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바로 앞 3절의 문장을 함께 해석을 하여야만 한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1:3)

다시 말하여 예수님은 육신으로 볼 때에는 다윗의 혈통이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육신적이며 인간적인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육체적으로 보면 다윗의 혈통에서 났기 때문에 메시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구약에서는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고 예언되어 있으므로), 성령으로 보면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선포, 확인)되셨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신성은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았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인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았는데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22)

 

예수님은 당연히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예수가 육신의 몸으로 오셨을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감추어져 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또는 예수를 좇는 제자들 조차도 완전한 확신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이셨기 때문에 육신적으로는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서 죽음에서 부활한 것을 세상에 선포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와 같이 거의 모든 주석은 이렇게 해석을 한다.

인정되다는 단어는 헬라어 호리스텐토스“(호리조)로서 공표하다, 선언하다. 결정하다는 해석이 보다 분명하게 그 의미가 나타난다. 영어로는 “be declared”(NIV, KJV) “to define correctly” 의 뜻이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보아도 다윗의 혈통으로 구약의 예언을 이루었으며, 영적으로 보아도 그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공동번역]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표준새번역]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현대인의성경]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이 인정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이 그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은 것처럼 해석하면 당연히 안되겠지만, 이 부활사건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확증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은 올바른 견해가 된다.

 

중요한 성경주석을 살펴보자.

주석은 대부분 두가지 견해를 말하는데, (1)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2) 부활 후에 더욱 높은 영광과 새로운 능력을 받으셨다고 보는 견해이다.

물론 부활 이후부터 비로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옳다. 하늘에서 또다른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선포했다는 해석은 이해가 어려우며, 후자를 이중기독론이라고 표현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필자는 첫 번째 견해를 주장한다. 부활 후에 또다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분이나 영광을 취한 것으로 해석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3절에서 육체적으로 다윗의 후손이었다는 대조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호크마주석, IVP 주석, WBC 주석등은 두가지 견해를 모두 설명하지만, 핸드릭슨과 변종길교수는 부활 후에 새로운 영광의 신분을 인정받았다는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권성수 교수와 최세창 목사는 필자와 같은 전자의 견해만을 지지하며, 특히 보이스 주석은 마틴로이드존스의 견해를 인용하며 전자의 견해를 지지하고, 카리스주석은 캘빈의 견해를 인용하며 필자와 같은 전자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그 성경구절은 예수님은 테토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부활 후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확증되었다는 의미는 변함이 없다.

 

호크마주석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 “하나님의 아들이란 성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아들은 삼중 의미(三重意味)의 성호니,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적 하나님의 아들. 화육(化肉) 관계의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나뉠 수 없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영원하신 아들이 아니고는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啓示)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야가 되실 수 없으며( 1:18),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메시야는 화육을 필요로 한다. 화육이 없이 어떻게 계시와 구속(救贖)의 메시야 사역을 행하실 수 있을까? “인정되셨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호리스텐토스인데, 그 의미에 대하여 바르트(Barth)는 말하기를 인정함, 역사적 행동이 아니고 원역사적(原歷史的)행동이라고 하였다. 이 견해는 계시(啓示)의 역사적 의미를 거의 무시한데 가까운 위기 신학(危機神學)의 사상이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역사 그것은 계시를 유효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에게 복속된 그 역사는 그리할 수 있다고 한다( 16:14). 인정되셨으니란 뜻은, 예수님께서 부활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부활이 된 후에야 인간의 인식에 완전히 인정되셨다는 뜻이라고도 하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인식에서 인정되신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 앞에서 영광(人性)을 취하신 후 없었던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뜻이라고 한다( 2:36).

 

톰슨주석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여 :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그분의 지상 사역의 2대 분기점이다. 특히 주의 부활은 그분의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주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류가 경험한 최대의 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주께서는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극한적인 고통을 당하심으로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신적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성도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약속해 주셨다.

 

IVP 성경주석

육신으로는 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이라고 풀어 쓰면 더 좋다. 이제 이 구절이 4절의 성결의 영으로는과 대비된다. 그러므로 3절과 4절에서 대비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아니라, 그분의 지상적 상태와 부활하고 승귀한 후의 천상적 상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시에 일어난 일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힘있게 선포된 것뿐만 아니라(NIV의 번역이 이런 인상을 준다), 예수님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지명된 것이다.하나님의 아들로 영원전부터 선재하던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함으로써 새로운 능력과 영광을 받았는데, 이 능력은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지금 행사되고 있다.

 

신약주석 시리즈 로마서주석(최세창)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것은 부활에 의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했던 그리스도께서 부활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명백하게 확인되었다는 뜻이다.이 점에 대해서 조선출님은 민중은 물론 12제자들까지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참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기는 그의 부활을 통하여서 이루어졌다. 즉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명확히 그리고 힘있게 선언되고, 증명되고, 인정되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로 그 아들을 가리켜, 바울은 곧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라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로마서강해1 (권성수교수)

예수는 다윗의 씨로 태어나신 분이었습니다. 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되고 인정되신 분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이제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만천하에 공포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이셨습니다.바울이 이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은 후에,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도가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핸드릭슨 주석(65)

그는 능력으로(옷입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는 표현에서 모든 강조는 능력으로(옷입어)”라는 말에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영원 전부터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의 낮아지심의 기간동안 그의 더할 나위없는 능력은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그 모든 영광 가운데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여기서 사용된 표현은 매우 유사한 문맥 즉,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2:36)는 베드로의 진술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 진술이 부활 전에는 예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아니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귀한 사역의 능력, 위엄, 영광 등이 분명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중임을 의미하였다

 

로마서 석의(변종길, 10-11)

그런데 여기서 성결의 영이라는 특별한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다음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이것을 뒤에 나오는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에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Godjet가 이해한 대로 여기서의 성결 썩지 아니함을 역사하신 영이다(16:10, 2:27). 둘째로, 여기의 성결의 영을 따라를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워짐에 있어서 성령 곧 성결의 영이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기서의 세워짐을 구약시대의 대제사장 임직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임직되고 세움받는 비록 대제사장 임직식 때와 같은 의식과 절차는 없었다 할지라도 이 거룩한 영 곧 성결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란 의미이다. 이러한 이해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참고구절은 히브리서 9:14이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가 순전히 문법적으로만 본다면 두가지 해석 중에서 두 번째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부사구는 원래 동사(분사, 부정사 포함)를 수식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앞에 이미 말한 단어나 구를 수식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적으로 보더라도 두 번째 것이 첫 번째 것보다 좀더 낫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4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세워진 사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수식하는 부사구는 두 개다. 하나는 능력으로이고 다른 하나는 성결의 영을 따라이다. 그리고 이 전체에 대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뒤에 덧붙은 것이다.

 

WBC 주석(111)

그 신분 또는 역할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되는데, 엔 두나메이를 동사라기보다는 명사로 취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그 구절의 가장 분명한 독법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능력으로는 이미도 바울에게서 중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거룩하신 아들됨이(3) 부활로 향상되고”, “확장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예수는 더욱더 충만하게 하나님의 순전한 능력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이는 단순이 신분이 아니라, 바울이 그 밖에 다른 곳에서 함축하고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실행의 권위를 하나님과 공유하게 되었다.바울에게서 이것은 복음이 단순히 메시아로서의 예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더 발전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메시아로서의 예수의 역할은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나타나는데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의 충만한 의미는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신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의 예수로 말미암아 오로지 실현될 수 있었다.

 

보이스 주석(57)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 바로 다음에 와서 문자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뜻이 된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죽은 가운데 부활함으로써 성결의 영에 따라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이로써 이 문장을 놓고 진행되는 세 번째 해석이 등장한다. 이 관점에서 능력으로라는 말이 하나님의 아들과 연관되며, 따라서 바울이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더 적절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마틴로이드존스는 이런 바른 견해를 갖고서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예수 그리스도는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성육신 이전에, 그리고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서 생기는가? 그가 취하신 형상에서 생긴다. 우리가 3절에서 들은 말씀은 그분이 세상에 오셨을 때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렇다. 그러나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셨다. 달리 말해서, 그분이 아기로 오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은 육신 안에 감춰졌다…. 그러나 사도는 그분이 부활함으로써 능력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분의 능력을 알 수 있는 것은 부활하신 상태에서이다

 

카리스주석(92-92)

능력으로에 해당되는 엔 뒤나메이는 분사 호리스텐토스’(인정되신)를 수식하여 강력하게란 부사구의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명사 휘우’(아들)를 수식하여 권세를 행사하는이란 형용사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전자처럼 호리스덴토스를 수식하면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라는 의미가 된다. 즉 하나님의 권능이 강력하게 나타난 부활을 통해 비로소 그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의미이다. 아들로 임명되었다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지위나 기능면에서의 변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후자의 설명처럼 아들을 수식하면 만물을 통치하는 권세를 위임받아 그것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선포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114-115)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엨스 아나스타세오스 네크론 (1)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셨다는 것과 (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전자의 의미는 뒤에 따라 나오는 능력으로라는 말과 연결되었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스도는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셨다.(10:42) 후자의 의미는 성도들의 부활 사건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26:23) 그의 능력은 자신의 하나님 아들되심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첫열매로서 장차 있을 성도들의 부활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 능력으로는 바울에게 중요한 말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예수의 아들 됨이 부활로 확증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왕적인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능력으로, 부활로,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다.(Calvin).

인정되셨으니 : 이에 해당되는 헬라어 호리스텐토스는 확정되었으니, 선포되었으니 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활하심으로써 아들의 지위와 영광이 밝히 증거되었음을 가리킨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