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축사에 대한 비판
이인규
최근에 교회나 단체에서 귀신을 축사하는 곳이 많다. 이러한 축사행위를 하는 곳은 그러한 행위가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성경은 분명히 귀신을 쫓아낸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성경적인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교회나 단체에서 행하여지는 귀신축사에는 자칫 간과하기 쉬운 비성경적인 문제점들이 있는데, 이러한 잘못된 문제점들이 한국교회에서 성행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1) 여러 가지 종류의 영들이 존재하여 악의 원인이 되는가?
최근에 일부 단체와 교회에서 악한 영과 귀신에 대해서 성경에 근거가 전혀 없는 수많은 종류의 명칭을 붙이는데, 예를 들면 불순종의 영, 음란의 영, 종교의 영, 질병의 영, 도박의 영…. 등이다. 심지어는 가난의 영과 채무의 영도 있어서 그 악한 영 때문에 질병, 사고, 불행, 죄악, 가난등의 모든 악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원목사(헤븐교회)를 비롯한 소위 ‘영성운동’이라는 명칭과 ‘내적치유’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들이 이러한 주장을 자주 하는데, 특히 베뢰아 계열과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단체들, 즉 G12, 두날개, 가계저주론등의 영향을 받은 양육프로그램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한다. 심지어 일반 교회에서도 이러한 주장들이 일반화 되어가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단체들의 주장은 모든 악의 원인은 그것을 야기시키는 악령과 귀신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질병조차 세분화하여 벙어리 귀신, 귀머거리 귀신, 암 귀신…. 으로 분류하며,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차멀미와 배멀미도 죽은 조상 중에 차사고와 배사고로 죽은 귀신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은 비성경적인 것으로서 논리적 또는 상식적으로도 심각한 몇가지의 오류를 나타내는데, 다음과 같다.
(1) 모든 죄악과 불행등이 이러한 악령 때문이라면 음란이나 불순종, 도박등의 범죄는 당사자의 잘못이나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된다. 만약 이 모든 불행과 고통, 질병, 가난, 죄악등이 모두 그것에 해당되는 귀신과 악령 때문이라면, 당사자의 모든 책임은 전혀 없어진다. 예를 들어 간음을 한 것도 음란의 영 때문이 되며, 그가 가난한 것도 가난의 영과 채무의 영 때문일 뿐이며, 도박을 한 것도 도박의 영이 들어왔기 때문이므로, 그 죄를 회개하거나 그 책임을 통감할 이유가 없어진다.
(2) 가난의 영과 채무의 영과 같은 이러한 악령과 귀신을 쫓은 사람은 모두 부자가 되어야만 하고, 질병의 영을 쫓아낸 사람들은 모두 질병에 걸리지 않거나 모두 완치가 되어야만 하며, 또한 악령으로 인한 불행이나 사고도 없어져야만 한다.
(3)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치유가 된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치유가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행위와 약이 어떤 논리로 귀신과 악령을 쫓아내는 효력을 갖었는가? 예를 들어 항생제를 먹고 감기를 치유한 환자의 경우는 항생제 성분이 감기의 영을 쫓아내는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인가?
(4) 예수님의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왜 죽음을 당하고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모두 해당 귀신과 악령에 사로 잡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5)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전쟁’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미혹되지 않음으로서 신앙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나 단체들이 주장하는 영적인 문제는 왜 모두 물질적이며 육체적으로 나타나는가?
2)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에게 귀신은 들어올 수 없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신다. 만약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에게 귀신(혹은 악령)이 들어와서 그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만약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귀신축사를 상습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리고 교인들에게 귀신과 악한 영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 교회의 교인들은 거듭난 성도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1)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에게 귀신이나 악령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며 (2) 귀신이나 악령에게 사로 잡힌 성도는 거듭난 성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그 교회는 거듭난 자가 없는 교회, 구원이 없는 교회가 될 수도 있다.
성경은 공중권세를 잡은 자, 즉 마귀는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또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딤전 4:1-3)
즉 마귀와 귀신에게 사로 잡히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인들은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가 아니며, 구원을 받을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라 믿음에서 떠난 불순종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데,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하나님이 거듭난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내주하게 하는 이유는 성도들 보호하고 인도하며, 그를 구원의 날까지 보증하고 인치시기 위함이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0)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1:13)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성도들에게 마귀와 귀신이 들어올 수 없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은 매우 많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빌 1:28)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이 취소가 될 수 있다면, 또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백성을 악한 자들에게 빼앗길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구원의 날까지 보증하고 인치시며 인도하고 보호하는 이유가 없어진다. 즉 성경적인 근거로 볼 때에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에게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 4:4)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세상에 있는 어떤 존재보다 크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키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 5:18)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 3:3)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너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8-29)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다시는 종의 영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8:14-15)
또한 아래 본문은 귀신이 들어올 수 있다는 내용은 아니며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내용이지만,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볼 때에 성령과 마귀를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3) 불법을 행하는 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예수님이 불법을 행하는 자로 간주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이 있으며, 귀신을 쫓는 자와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주의 이름’으로 행하던 자들인데,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도무지 알지 못하며, 주님에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신다. 즉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들은 주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 구절이 시사하는 바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다고 하여도 모두 진실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 종류의 부류를 오늘날로 적용시킨다면 대부분 목회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있는데, 이러한 자들도 거짓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들의 부류에 속한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 19:13-16)
즉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단으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성경은 종교를 빌미로 이익의 재료로 악용하는 그러한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으며, 권능을 행하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거짓 진리를 가진 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다시 말하여 우리는 이러한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기적과 표적같은 현상으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성경은 이 두가지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언급하고 있다. 사도요한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의 말을 듣는가, 듣지 않는가”로서 알 수가 있다고 말한다. 본문에서 ‘우리의 말’은 ‘사도의 가르침’, 즉 기록된 성경말씀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4) 승리하신 예수님
혹간은 이 세상을 마귀와 하나님의 대결구도로 생각하여 인류의 역사를 ‘신들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방종교의 이원론적인 생각일 뿐이다. 마귀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종말적으로 그들을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만약 지금도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아직도 이상한 악령들이 들어와서 임의대로 각종 악의 원인을 일으킬 수 있다면,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취하면 우리는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3-17)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하게 된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악한 자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14)
성도들이 마귀에게 이길 수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십자가 승리에 힙입어 마귀의 미혹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다. 캘빈은 기독교 강요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두가지의 입장을 말하는데, 독자 여러분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이곳에 인용한다.
첫째 마귀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통치주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의 미혹을 겁내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담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하며, 둘째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마귀와 씨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는 것도 기억하여야 한다.
기독교강요 1권 17장 11절
그러나 말이 재갈에 의해 제어되는 것처럼 마귀와 악행자의 무리 전체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완전히 제어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사실은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는, 우리를 해치기 위한 어떤 음모도 꾸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혹 그런 음모를 꾸몄어도 준비를 할 수가 없고, 충분히 계획했을지라도 그것을 실행시키기 위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음을 성도들은 기억하도록 하자. 또한 마귀와 그의 부하들은 결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받들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기독교강요 4권 27장 46절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이 있다. 거대한 용사인 마귀와 전투를 벌이는 것이나 그의 힘과 공격을 견디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거나 조롱이 될 것이다. 확신에 차서 이 싸움을 위한 전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들이 대하는 원수가 얼마나 사나우며 얼마나 잘 무장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