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죽음과 부활

  • 12월 07, 2016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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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목사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분리시켰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춘천 한마음교회의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착각이며, 동시에 악의적인 비난으로 보인다. 인터콥을 지지하는 전태 목사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썼더니, 그와 같은 내용을 여과없이 그대로 모방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논리성과 비상식성이 결국 드러나게 되어있다.

   

김성로목사의 주장은 죽음과 부활을 분리하자는 견해가 아니며, 십자가 죽음에만 머물지 말고 부활까지를 믿어야 한다는 신앙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죽음과 부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주장도 아니고, 죽음을 부정하고 부활만을 강조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모 교수의 주장과 같이, 평소에 한국교회가 설교에서 십자가 죽음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부활에 대해서는 부활절이 되어야 한두번 설교하는 그런 양상을 보였던 것은 현실이다. 그래서 부활을 강조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십자가 죽음을 부정하면 그 뒤에 부활이 따라 올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아도, 죽지 않고 부활할 수가 있는가?

김성로목사의 책과 교회의 양육교재를 살펴보면 이미 문제가 있기 수년 전부터 죽음과 함께 부활을 강조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김성로목사가 비판하는 것은 부활에 대한 소망과 비젼이 없는 죽음일 뿐이며, 십자가 죽음을 부정한 적도 없고, 약화시킨 적도 없으며, 부활과 죽음 중에서 하나를 택일하라는 주장도 아니다. 김성로목사는 오히려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를 바라보자고 말한다.

    

오히려 정이철목사와 그 측근들이 죽음과 부활을 분리시키고 있는데, 그들의 견해는 죽음만 믿으면 부활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소위 부활 무용론이 결국 복음에서 부활을 배제하는 것이며, 죽음과 부활을 분리하는 견해가 된다. 양쪽을 함께 믿어야 한다는 것이 분리인가? 한쪽만을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 곧 분리가 된다.

   

모든 신학자들은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찬성한다. 부활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신학자는 없을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자체가 존립할 근거가 없어진다. 신학교수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부활을 강조하면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며, 부활을 강조하면 죽음과 부활을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목사들이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다.

   

박윤선 박사의 주장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사탄의 승리하는 것이 되고만다. 김준삼교수도 그의 책 교의신학에서 동일한 주장을 한다.

   

바빙크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살지 못하셨다고 말한다면 죄악의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정복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승자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탄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으셨다는 부활신앙이 아니었다면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확실하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79-280)

   

조석만교수도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무의미한 것이며 십자가가 복음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부활이 없으면 복음이 될 수 없으며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무의미한 것이다.기독교의 소망은 어디까지나 부활신앙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조직신학 하, 조석만, 도서출판 잠언, 1138)

   

한천설교수는 목회와 신학 2000 4월호에 죽은자의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사건으로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대칭시켜서는 되지 않지만,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는 부활을 통하여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이것이 17절에서 바울이 성도의 구원과 관계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인 것이다.

  

박형용교수는 그의 교의신학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속죄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의 본질을 가르쳐주는 큰 광명이다. (교의신학, 기독론, 박형룡, 보수신학서적간행회, 201-202)

   

강병두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조 해설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활은 그리스도 교리의 핵심이며, 크리스천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즉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과 허무의 표상이 불과하기 때문에 크리스천에게 아무런 삶의 용기를 주지 못한다.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6-19)고 했다. 부활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크리스천의 삶의 목표가 된다는 말이다. 부활이란 죽었던 사람의 몸과 생명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 해설서, 그리스도교 기본교리, 강성두, 글로리아, 334)

   

게리 브레셔츠는 웨스턴신학대학의 신학교수이며 신학 연구 학과장이다. 또한 마크 드리스콜은 시애틀의 마스힐교회를 세운 목사로서 사도행전29장 교회개혁네트워크 대표이고 부활선교 신학협회를 설립한 목사인데,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인은 속은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지금도 죽어 계신다면 기독교도 죽은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기독교도 살아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전서 1517절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구주도 없고 구원도 없고 죄 용서도 없으며 영생의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다.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은 또다른 선하지만 죽은 인간에 불과하게 되고, 따라서 이 세상에서나 죽음의 순간에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쉽게 말해서 부활이 없으면 오늘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쉽게 속는 사람들이다. 내세의 부활 생명에 대한 그들의 소망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겠다는 한 죽은 사람을 신뢰하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소망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교리는 의문의 여지없이 매우 의미심장하며 극히 세심한 숙고와 고찰이 필요한 교리이다.(기독교 교리, 마크 드리스볼, 게리 브레셔스 공저, 부흥과개혁사, 371-372)

   

마틴로이드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원은 몸의 부활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 사실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쓴 이유입니다. 돌아다니면서 몸의 부활이 없고 영적인 부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 구원이 없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여러분에게 처음 왔을 때 전파한 이 믿음에 굳게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전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2)

   

부활이 필요없다고 하거나 부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지 않는 목사라고 생각한다. 캘빈의 주장과 같이 십자가 복음은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포괄하는 것이다.

   

김성로목사의 부활 강조는 귀중한 복음이다. 초대교회부터 성도들은 부활을 소망을 갖고 있었으므로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춘천 한마음교회는 성도들이 부활복음을 접하면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성장하게 된 케이스이며 산 증거이다.

필자는 신학교수들이 참여하여 부활에 대한 신학을 정립하고,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큰 생각이 없이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 믿음의 고백 안에 부활에 대한 신앙이 포함되어 있다는 자체를 망각하고 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안믿어도 된다는 주장이 과연 복음이란 말인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