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체에 대해서 재창조가 아니라고 하는 조직신학자들의 견해
이인규
빈 무덤
(조직신학3, 이성주, 성지원, 437-440쪽)을 보면 부활체에 대한 많은 조직신학자들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놓았다. 이 내용을 보면 조직신학적인 견해가 어떤 것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과연 정이철목사의 주장대로 우리의 부활체가 전혀 다른 구성요소로 재창조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조직신학자들은 재창조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평소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한다. 물론 장차 궁극적인 부활체는 신령한 몸이며, 썩지 않는 몸이며, 강한 몸이며, 영광스러운 몸이다.
정이철목사는 잘못된 주장을 해놓고 끝까지 옳다고 우기면서 신학교수들의 명예까지 손상시키고 있다. 이미 정이철목사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자기의 큰 잘못은 돌이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은 과장하고 확대하다 못해 인위적인 조작까지 하는 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토론의 논리적인 내용은 찾을 수 없고 욕설과 인격적인 비하만 쓰고 있다.
필자에게 계속 평신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필자가 평신도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필자는 평신도로서, 26년간을 이단을 연구한 사람이며, 현재 어느 장로교의 이단상담소에서 이단상담을 배우기 위한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일주일에 두 번 이단상담을 가르치고 있으며, 감리교 총회가 인준한 신학교에서 이단상담을 가르치고 있다.
(조직신학3, 이성주, 성지원, 437-440쪽)을 살펴보자
부활한 외형적인 모습은 우리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외형적인 모습과 동일한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부활시킬 때에 과거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신체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창조하지 않고땅에 묻힌 그 실체를 다시 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찰스 하지는 장래 부활할 몸과 죽은 신자들이 과거에 가지고 있는 몸과는 서로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부활이라는 관념 속에 그러한 증명이 포함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다시 산다고 하는 의미는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것을 그대로 회복시킨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그는 현재의 몸과 장래 부활할 몸의 모습이 동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벌코프는 현재의 몸이 장래 부활할 몸으로 부활할 때 같은 모습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조금도 모순성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우리 몸의 여러 지체들이 계속 변화하고 있지만, 그러나 모든 지체의 동일성은 보존되면서 변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취벨드 하지는 현재의 몸과 부활할 몸의 차이에 대해서 인간의 몸의 성장과정을 비유로 살명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늙으면 젊었을 때 가지고 있던 세포의 구성분자들이 다 피괴되거나 소멸되어 버린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노인이 되면 외형적인 모습이 변화된다. 그러나 청년이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 본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젊은 사람이 노인이 되기까지는 외형적인 모습이 여러번 변화되면서 늙어가는 것이 원칙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현재 몸이 부활체의 몸으로 구성될 때에도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죽은 시체의 구성요소가 출생할 때의 구성요소와 같은 것 같이, 부활할 몸의 영혼과 죽은 때의 영혼은 분명하게 동일한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쉐드는 한번 태어났던 인간의 몸이 두 번째로 구성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처음 출생을 한다는 사건보다 더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의 몸이 장차 부활한다는 사건은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이며, 동시에 생태학적으로도 증명될 수 없는 엄청난 기사와 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이슨은 부활의 몸이 새로운 창조물에 속한 피조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현재 우리가 지난 몸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몸일 것이라고 말한다.
와일리는 현재의 몸이 부활할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신성한 계시라고 말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장42절부터 44절을 인용해서 장래의 부활한 몸에 관해서 논증했다. 그는 계속해서 논증하기를. 돌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면 형체는 변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둘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웨슬리는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설교에서 죽은 자가 부활할 때에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몸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이고도 명백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신복윤교수의 종말론, 개혁주의신행협회, 366-367쪽)
동시에 부활체는 우리의 신체와 동일하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위하여 새로운 신체를 창조하지 아니하시고,땅에 묻힌 그 신체를 다시 살리신 것이다. 부활의 첫열매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부활체가 자신의 이전 신체와 동일하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명확하게 증거해 보이셨다.
(개혁주의 종말론, 안토니 A. 후크마, 기독교문서선교회, 355쪽)
일찍이 우리는 현재의 육체와 부활육체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 바 있다. 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연속성과 아울러 차이점도 있다고 한다. 연속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활에 관해 말할 하등의 이유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의 현재의 주민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면 우리는 구태여 부활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게 된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 것이며(고전 15:52) 살고있는 우리도 변화될 것이라고(52절) 바울이 말한 참뜻은 존재의 두 국면 사이에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실상 53절의 언어는 이러한 연속성을 암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런 연속성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바울은 신자들의 부활과 그 후의 교회의 휴거에 대해 묘사한 후에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다(살전 4:17). 부활이나 변화 후에 주님과 함께 항상 있게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인 것이다.
(기독교 교리, 마크드리스콜, 게리브레셔스, 부흥과개혁사, 383쪽)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부활 전의 몸과 같은 몸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린 그분으로 인식했고,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의 목소리로 예수님을 알아 보았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 언제나 사람들에게 즉시 인식된 것이 아니라 신비롭게 나타나셨다가 다시 나타나시는 것처럼 보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밀라드 J 에릭슨, 종말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05-107쪽)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3-288쪽)
(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 160-167쪽)
그 외 수많은 조직신학적인 증거가 얼마든지 있지만, 타이핑이 힘들어서 그만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