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5장 1절의 책이 요한계시록인가?
이인규
1) 계시록이 비밀로 인봉되었는가?
최근에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자기들만의 이상한 해석으로 강의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요한계시록이 비밀로 인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말세가 되면 그 이단단체의 어느 특정한 교주나 지도자만이 그 비밀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 들어도 그러한 주장이 황당한 주장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이단들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을 자기들의 교리에 짜맞추는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초신자들이 미혹되기 쉽다. 이러한 성경 짜맞추기 수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곳이 바로 신천지, 박태선 계열, 극단적세대주의와 같은 이단이다.
이단들은 성경이 비유와 짝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을 비유풀이로 해석하는 수법을 사용하면서 그것이 영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의 본래 의미와 달리 해석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천지는 계시록의 비밀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는데, 계시록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과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비유적으로 해석하기 용이하며, 물론 계시록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이만희 교주라는 것이다. 현재 수많은 이단교주들이 계시록 5장의 책이 계시록이라고 주장하며, 계시록 10장의 책을 교주 자신이 받아먹었다고 주장을 한다.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 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이다. 천하만국은 계시록 10장에 기록한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한 목자 앞으로 나아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소성 받아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14쪽)
2) 계시록 5장1절의 책이 요한계시록인가?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5:1-5)
신천지에서는 계시록 5장1절에서 일곱인으로 인봉되어진 책이 바로 계시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시록 5장의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다. 그 일곱인을 예수님이 차례로 떼면서 일어난 일을 사도요한이 6장부터 계시록에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계시록을 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 책이 계시록일 수 있는가… 지극히 상식적인 시간적인 순서에 대해서 착각을 하지 않아야만 한다.
계시록 5장의 두루마리 책은 사도요한이 구약의 에스겔을 인용한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 2:9-10)
계시록 5장1절의 책도 안팎으로 썼으며, 에스겔 2장10절에서 책도 안팎으로 썼는데, Johnson 이라는 성경학자는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안쪽에만 쓰는 경우와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것을 opisthograph(오피스토그라프)라고 불렀으며, 한쪽만 글을 쓰는 두루마기는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비매품이었다….. 두루마리는 촛물로 봉하고,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그 당사자만이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였고 보관되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으며 공개되었다”
두루마리 책에 인봉을 하였다는 것은 그것을 쓴 저자 외에는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판매용의 책이 아니라 원본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계시록과 관련된 에스겔서를 모두 살펴보자.
겔 2: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겔 2: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 3: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겔 3: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겔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 3: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겔 3: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겔 3: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에스겔서의 본문은 계시록 5장과 10장에서 사도요한에 의하여 인용되고 있다.
계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계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계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계 10: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그 책을 누가 먹었는가? 에스겔서에서는 에스겔 선지자가 먹었고, 계시록에서는 사도요한이 먹었는데, 예레미야 15장16절에도 유사한 내용은 나타난다.
그 공통점이 입에는 꿀과 같이 달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단 교주가 그 책을 받아 먹었다는 해괴망칙한 주장이 어느 구절에서 어떻게 유추되었는가? 이 책을 먹었다는 말은 그 책의 내용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신천지 이만희는 자신을 “사도요한격”, 또는 “새 요한”이라는 이상한 용어를 사용하며 자신과 사도요한을 동일한 인격인 것처럼 조작하며, 마치 자신이 계시록을 받아먹은 것처럼 성경 짜맞추기를 하는 것이다.
⓵ 그 책은 장래의 일이 기록된 두루마기 책이다.
그 책(비블리온, 두루마리)은 장래의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계획이 기록된 책으로서 에스겔서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책이라고 말한다.
공동번역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 소리“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온갖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이라고 번역하였으며, 현대인의 성경은 “탄식과 슬픔과 재앙의 말“이라고 번역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슬픈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실제로 계시록 6장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일곱인을 차례대로 떼면서 인류에 닥치게 되는 일곱 재앙이 나타나게 된다.
정통신학적인 해석에서는 그 책은 계시록이 아니라 궁극적인 장래의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책으로 본다. 하늘 위에나 땅 위, 땅 아래에서 능히 그 책을 볼 자가 없다는 구절은 그 의미를 대변하여 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자. 사도요한은 계 4:1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고 하늘로 올라가 장차 될 일을 보게 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 4:1)
즉 사도요한이 하늘 보좌로 올라가서 본 것이 바로 계시록 5장이다. 만일 그 책이 계시록이고 사도요한이 쓴 것이라면 상식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가? 사도요한이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고 쓴 것이 요한계시록인데, 그 환상에서 본 책이 어떻게 아직 쓰지 않은 계시록일 수가 있는가?
또 계시록을 쓴 저자가 사도요한이면, 그 책을 인봉한 사람이 사도요한 자신으로서 그 책과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을텐데, 왜 요한은 그 봉한 책을 펴거나 볼 수가 없어서 울었다고 말하는가?
신천지는 계시록이 봉하여진 비밀이라는 성경적인 근거로 다음 성경구절도 제시한다.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개역한글, 사 29:11-12)
본문은 요한계시록이 봉하여졌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계시”(헬, 아포칼립토, 영 Revelation)라는 말은 “하나님이 자기 뜻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그동안 수많은 방법과 루트를 통하여 자신의 멧세지를 이스라엘에게 계시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마치 봉해진 책처럼 생각하여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피하여 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개역개정, 사 29:11-12)
본문은 계시록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봉한 책이라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공동번역] 이렇듯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계시되었지만, 그것은 밀봉된 책에 쓰여진 말씀과 같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므로 모든 예언적인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해진 책과 같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이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밀봉된 두루마리의 글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많은 계시를 알려 주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그 멧세지를 마치 봉한 책으로 간주하여 그 내용을 알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모든 묵시”는 계시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 온 모든 것”을 의미하며, 그와 같은 표현은 비유법으로서, 마치 밀봉된 책인 것처럼 이스라엘인들이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신천지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대부분 앞뒤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⓶ 그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고 했으며 꿀같이 달았다고 말한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겔 3:3)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계 10:10)
그 책을 먹고 꿀같이 달았다고 한 사람은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요한이다.
이 책은 계시록이 아니며, 이단교주들은 에스겔과 사도요한과 아무 관계가 없다. 더 구체적으로 사도요한은 이만희 교주와 아무 관계도 없다.
⓷ 그 책을 먹은 다음에, 에스겔서는 이스라엘에게만 고하라고 말하지만, 계시록에서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라고 말하는 차이점이 있다.
이 차이점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선민을 위한 내용이었고, 신약에서는 이방인을 포함하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단들이 “다시 예언하라”는 구절을 마치 기록된 계시록을 다시 예언하라고 한 것처럼 조작을 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 뜻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서는 장래의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을 이스라엘에게만 전하라고 하셨지만, 계시록을 통해서는 사도요한에게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을 하라고 말하는 것으로서, 즉 전파하는 대상에 대해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즉 계시록에서 사도요한이 에스겔서를 인용한 것은 자신도 이방인을 포함한 열방에게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의 멧세지를 전하여야할 선지자적이며 사명적인 직분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 성경은 계시록이 봉인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있는 가감에 대한 경고에서 ‘이 책’에 대해서 계시록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사도요한이 책을 다 쓰고 마지막 결론을 맺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계시록은 사실 상징과 비유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난해하다. 그러나 계시록은 사도요한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멧세지이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장차 당할 고난과 고통은 짧은 시간이지만, 천국의 소망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단들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경을 짜맞추는 것이 곧 기록된 성경 외에 가감을 하는 것이 될 것이며, 그러한 방법에 미혹되는 것은 곧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함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계시록 22장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단들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즉 22장의 ‘이 책’은 당연히 계시록이며, 저자인 사도요한에게 천사는 “이 책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봉하여지지 않은 것으로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의 계시록이다.
“또 내게 말하되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때가 가까우니라” (계 22:10)
4) 신천지의 반문에 대해서
신천지는 이렇게 반문한다.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으면 당신들은 계시록을 다 아느냐? 정통기독교는 왜 계시록에 대해서 해석이 다른가?”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거의 억지 혹은 무지에 가깝다.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그 내용을 모두 획일적으로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계시록이 아닌 부분에서도 난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적 견해가 나타날 수 있다. 그 증거로, 성경에는 사도 베드로도 사도바울의 편지에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것을 억지로 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초대교회의 은사와 직분 중에는 지혜와 지식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다는 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공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배우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비정상이다. 성경은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은 일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6)
즉 성경이 봉하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독자 모두 획일적으로 이미 알아야만 한다는 주장은 무지에 가까운 주장이다. 아주 쉽게 예를 들면, 이해가 어려운 철학책이 봉하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읽는 모두가 그 책을 모두 동일하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성령께서 성도를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알려 주시거나, 장래의 일을 모두 예언하여 주시거나, 성경 주석이 되어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신천지가 이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 특정한 개인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고 봉한 것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이 기록한 내용과 다르게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이 모두 비밀이고, 짝이 있으며, 봉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만희가 받았다는 실상계시는 그 내용이 계속 바뀌어 왔고, 그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다른 거짓으로 밝혀진 것도 많다는 것은 그 실상계시가 거짓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5) 환상계시와 실상계시
신천지는 계시를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별한다. 사도요한은 환상계시만을 받고 그 실상이 무엇인지 모른 상태에서 계시록을 기록하였으며, 이만희 교주는 실상계시를 받았으므로 계시록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계시는 계시일 뿐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분되지 않는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계시록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 환상계시를 해석하기 위하여 이만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곧 이만희가 구원자라는 주장이며, 결과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 위하여 비유풀이를 하는 것뿐이다.
성경에서 ‘환상’이라는 단어는 vision을 말하며, ‘실상’이라는 단어는 fact, true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계시는 곧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젼(vision)을 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은 당연히 모두 사실(fact)이 되어야만 한다. 구태여 환상계시니 실상계시로 분류할 아무런 근거도 없으며,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거짓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한 용어일 뿐이다.
그들이 실상계시라고 말하는 내용들이 왜 자꾸 수정되어 바뀌고 있으며, 잘못될 수 있다고 말하는가? 오히려 신천지는 인간이 누구나 실수할 때도 있다고 변명을 한다. 그러한 변명은 이만희의 주장들이 하나님께 받았다는 실상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여 준다.
신천지가 비유풀이를 가르치는 이유와 그 결론은 모두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석하기 위함이며, 그것을 신천지는 실상계시라고 부르며 오직 이만희만이 요한계시록을 실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창한 실상계시라는 것은 결국 너무 유치하고 코믹스럽게 그 단어들을 신천지 교회의 인물과 역사로 해석을 하고 있다. 과연 2000년 전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한국 땅의 사이비 교주가 나타나서 이루게 되는 신천지 교회를 위하여 계시록을 썼다고 생각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2000년 동안 비밀로 감추어 놓으셨다는 주장이 되고만다.
만약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의 계시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만희교주를 만나야만 그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신천지가 나타나기 전 2000년 교회사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구원을 받지 못하였단 말인가? 심지어 이만희의 실상을 몰랐던 예수님의 열두제자들과 그 제자들조차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약 이천 년 전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환상 계시이다. 당시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환상으로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했지만 그 예언이 언제 이루어지는지, 실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만, 예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계시를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한 때가 되면 비유로 비사로 감추어둔 예언 속의 인물과 사건이 이 땅에 실상으로 나타난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예언대로 나타난 실상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니 이것이 바로 실상 계시이다. 이와 같이 실상 계시는 예언이 응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응할 때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사도 요한이 이 땅에 살아나서 자신이 기록한 말씀과 그 실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의 목자’가 나타나서 실상 계시를 보고 듣고 증거하게 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21쪽)
그러나 계시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계 1:2)
성경은 “다 증언하였느니라”라고 말하며, 공동번역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증언합니다.”라고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로, 현대인의 성경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하였습니다.”로 번역하였다.
계시록 1:19에는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라고 말하였으며, 계시록 22:18-19는 계시록의 내용에 가감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요한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환상계시만 받았다는 신천지의 주장은 웃을 수도 없는 황당한 주장이다. 다 증언했다는 말이 모르고 기록했다는 뜻이 될 수 있는가? 또 다른 이상한 교주가 나타나 자기가 진짜 실상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상한 해석을 할 때에 신천지는 무엇으로 그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가?
한편 이만희 교주가 해석한 실상계시가 엉터리와 거짓말이며,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만희 교주만이 알고있다는 실상계시와 성경해석은성경을 조작하고 만드는황당하고 유치한 것으로서 그 오류가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해석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조차 모르는 내용까지 있다.
6) 계시록 5장의 책에 대한 결론 요약
1) 안팎으로 쓴 그 두루마리 책은 계시록이 아니며, 에스겔서의 내용과 계시록 6장 이후의 일곱인이 열리는 사건을 보면, 장래의 하나님의 구속사이며 재앙과 심판이 기록된 책이다.
2) 그 책은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아직 쓰기도 전에 하늘보좌에 올라가서 본 환상으로서, 그 책을 아직 쓰지도 않은 계시록이라고 말할 수 없다.
3) 만약 그 책이 계시록이라면 그 저자인 사도요한이 그 책을 볼 수 없어서 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당시 두루마리는 그것을 쓴 저자가 인봉하기 때문이다.
4) 그 책을 에스겔서에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계시록에서는 사도요한에게 먹으라고 하며, 먹으니 입에는 꿀같이 달았다고 말한다.
5) 그 책을 먹고 나서 에스겔서에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에게만 고하라고 말하지만, 계시록에서는 사도요한에게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말하는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한 대상이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었고, 신약에서는 이방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6) 계시록은 인봉된 책이 아니며, 오히려 계시록에 대해서는 인봉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계22:10)
7) 신천지는 이러한 비유풀이를 통하여 이만희 교주를 보혜사, 대언자, 이긴 자, 두 증인, 두 감람나무, 사도 요한격, 참 목자, 사명자, 백마, 재림예수의 영을 받은 육체, 동방의 의인, 만유의 주재, 빛, 성육신으로 오신 분,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삼위일체의 세 보좌가 있는 몸, 생명나무, 새 예루살렘, 새 이름 등등…. 이라고 성경의 용어들을 모두 적용시켜 신격화하여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가증스러운 사이비집단이다. 결론적으로 오직 신격화된 이만희 교주를 통하여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신천지교회로 오라는 것이다.
성경의 단어를 현재 인물로 비유하거나 어느 교회나 단체로 적용하는 해석은 사이비집단의 전용수법이다. 또 삼위일체 하나님 외의 어떤 사람의 이름을 강조하거나 높이려는 곳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라고 할지라도 명백한 이단이다. 성경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한 책이며, 구원은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 66권이 말하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멧세지를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이 성경과 다른 내용을 가르치는 곳은 이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인간에게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느니라” (행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