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구원의 완성이며, 복음의 핵심이다.
이인규
십자가 복음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는 김성로목사가 그의 책, 부활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것은 동전 양면과 같아서 두가지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죽음까지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포함한 예수의 모든 과정을 다 믿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즉 예수의 탄생도 중요하고, 공생애도 중요하며,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중요하고, 예수의 재림과 부활, 심판도 중요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죽음과 부활이라고 보는데, 십자가 죽음은 대속의 사역으로서 중요하지만, 부활은 구속의 완성과 성취로서, 또한 기독교 자체에 대한 존재 여부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살펴본 김성로목사는 부활을 강조하지만, 십자가를 부정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양심을 속이는 조작과 모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활을 믿지 않아도 이미 십자가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부활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심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도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십자가 죽음은 구속의 현재적인 의미를 갖지만, 부활은 구속의 완성적인 의미를 갖는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여 주는 첫열매가 되어짐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많은 조직신학자들은 부활이 없다면 구속은 성취될 수 없으며, 칭의와 중생의 근간도 없어지고, 결국 복음은 헛것이 되며, 장래 우리의 부활도 없게 되므로, 기독교 자체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박윤선 박사는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사탄에게 패배하였다는 결과가 되어진다고 말한다.
성경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고전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혹간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십자가 구속만으로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살지 못하였다고 하여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말인가?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이러한 사람들은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한 것이며, 아울러 신학적인 지식도 부족하고 구원관도 정확치 않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복음을 가리우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십자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죽음만을 믿는 신앙에 그치지 말고, 부활까지를 믿는 신앙의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죄사함도 의롭다함도 거듭남도 모두 헛것이 되고만다. 또한 복음도 헛것이요, 기독교 자체가 헛것이 되고만다. 사탄에게 패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대표적인 조직신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자
1. 캘빈의 기독교 강요(영한대조 기독교강요, 미성문화원 CD)
16장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및 하늘에 정좌하심
13.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다음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다. 이것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모든 체계는 불완전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장사에서는 연약함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은 그 완전한 힘을 얻기 위하여 이 모든 사실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죽음을 통해 구원의 완성을 이룬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했고, 그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충족되었으며, 저주는 제거되고, 형벌은 완전히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심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벧전 1:3).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등장한 것처럼, 죽음을 이긴 우리 신앙의 승리 역시 그의 부활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다음 말이 그리스도 부활의 성격을 잘 표시해 준다.“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이 말은 마치 그가 “죽으심으로 죄는 제거됐고 그의 부활로서 의는 다시 살아나 회복되었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만약 죽음에 굴복했다면, 그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겠는가? 또 만약 그가 이 싸움에서 졌다면, 어떻게 그가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요소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는 죄가 제거되고 죽음이 소멸되었으며, 그의 부활을 통해서는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되살아나 그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능력과 효력을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부활의 덕분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느니라“(롬 1:4)고 말하였다.
이는 그때에 마침내 하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고, 이 권능은 그의 신성을 보여주는 맑은 거울이요 또 우리의 신앙의 확고한 기둥이 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느니라“(고후 13:4)고 가르치며, 같은 뜻으로 다른 곳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려 하느니라“고 하여 완전에 관하여 논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그의 죽으심에 참여한다“고 했다(빌 3:10). 이에 관한 베드로의 말은 보다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셨으니 이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 신앙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지탱되지만, 그것은 동요된다는 말이 아니고 신앙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권능이 부활에서 특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만을 언급할 때에는 항상 그의 부활에 속한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이와 동일한 제유법이 “부활“이란 말에도 적용되는데, 그의 죽음과는 별도로 말하게 될 때에는 언제든지, 특히 죽음에 관계된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는 승리자의 상급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부활이요 생명“이 되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속임수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고전 15:17).
2. 박형용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박형용 교수가 리차드 개핀 박사의 「부활과 구속」 추천사 일부 중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부활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사건이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구원 문제를 논할 때 예수님의 죽음을 그의 부활보다 더 강조하여 다루었다. 예수님의 죽음을 속죄(atonement)의 성취로 강조하여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물론 예수님의 죽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잘못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는 부활에 대한 강조가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에서 구속의 성취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대치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Gaffin 박사는 바울 신학의 중심주체인 부활을 성도들의 구원과 결부시켜 다룬 다음 예수님의 부활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 2. 구속사역의 구성분 :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사역의 본질의 구성분이며 따라서 복음의 구성분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눌 수 없는 사건으로 성경에서 항상 함께 언급된 것은 부활은 구의 죽음과 함께 구속사업의 기조가 되는 때문이다.
1) 속죄 사업의 수행에 필요 :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속죄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2) 구속의 본질에 광명 :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의 본질을 가르쳐주는 큰 광명이다.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아의 인격 완성을 기대함에는 부활의 광명에 의하여서만 그 본격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인생은 영과 육의 합성체이므로 완전한 구속을 얻음에는 바울의 말과 같이 몸을 속량하는 것이 그 요결의 하나다.(롬8:23) 마22:32의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산 자의 하나님이시면 영뿐만 아니라 육까지 살게 하여 주실 것이 당연한 것이다. (교의신학, 기독론, 박형룡, 보수신학서적간행회, 201-202쪽)
3.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이승구 교수가 국제신학에 기고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를 보면 “부활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객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근거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 부활은 십자가의 궁극적 구원적 의미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우리의 구속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부활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명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구속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4. 한천설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
한천설 교수가 목회와 신학 2000년 4월호에 “죽은자의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기고한 글 일부이다.
– (5)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아직도 여전히 ‘죄 가운데‘ 에 있다(17절).
다섯 번째의 바울의 논리에서 이제 우리는 하나의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아직도 여전히 죄 가운데에 있다‘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통해서 바울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의 의미가 신자들이 그의 죄 된 성향을 정복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신학적으로 그럴듯하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특히 그 다음절– 바울이 ‘너희 죄 가운데에‘ 라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특징짓는 죄 되고 저주받은 상태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도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죄 되고 저주받은 상태에 동일하게 머물고 있다는 의미이다.어떤 사람은 여기서 강하게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부활과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는데, 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아직도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도대체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이러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임이 갖는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말하기를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상관없이 “여전히 그들의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만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구속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리스로의 부활‘이 그의 구속적 죽음이 갖는 효과에 대한 단순한 증거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해진 주님의 구속사역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구속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죽음은 그의 부활이 그런 것처럼 동일하게 그가 승리한 사건으로 보여지며, 부활 또한 그의 죽으심과 동일하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부활을 단지 구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우리에게, “부활 없이는 어떠한 죄의 용서함도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롬 4:25참조).
이제 우리는 이 두 사건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 둘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이런 상호보완적 측면에 대해 Ramsey는 다음과 같이 잘 정의했다. “사도적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부활인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만으로도 아니고 부활만으로도 아니며, 또한 전주(prelude)로서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나 마무리 연주로서의 부활이 아니라 복음에 실제적인 만큼 세상에 도전이 되는 그러한 방식에서 두 가지의 종합인 것이다“(The Resurrection of Christ, p. 19).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이중적 관점은 바울 사고의 모든 관점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사건으로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대칭시켜서는 되지 않지만,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는 부활을 통하여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이것이 17절에서 바울이 성도의 구원과 관계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인 것이다.
5. 권연경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권연경 교수가 목회와 신학에 “부활은 복음이다”에 기고한 글 일부이다.
– 우리가 부활의 하나님을 믿어 의롭게 된다면, 부활이 없는 칭의란 존재할 수 없다. 칭의를 죄 용서와 동일시하고, 이를 전적으로 십자가의 효과로 간주하는 통상적인 경향과는 달리, 바울은 칭의가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예수 우리 주”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죽음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물론 이는 십자가 죽음이 죄 용서를 위해, 그리고 부활이 칭의를 위해 필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죄 용서와 칭의가 나누어질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와 부활도 그러하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칭의에는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6. 황승룡박사
황승룡 박사는 부활에서 종말이 현실화되며, 현재화된다고 말하며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부활을 통하여 죄와 악이 무너뜨려진다고 말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종말은 현실화된다. 죽은 자로부터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의 종말적 사건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종말은 현재화된다.이 사건에서 죄와 악의 권세는 흩어졌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창조행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새로운 종말적 행위였다. 하나님의 이 행위(부활)는 죄와 악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시작하신 징표였으며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왕이시고 주님이심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신학연구도서4권 조직신학 하권, 황승룡, 한국 장로교출판사, 503쪽)
–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성한 종말론: ….이 용어는 세가지 시제로 표현할 수 있는데, 과거의 사건으로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롬8:24), 현재적 경험으로는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15:2), 미래의 소망으로는 “더욱…구원을 얻을 것이니”(롬5:9)등이다. 현재 우리의 구원은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느니라”(롬8:23)에서처럼 불완전하다. 우리는 종말의 그 때에 완전한 구속을 받을 것이다….. 종말은 이처럼 우리의 구속을 완성시킨다.뿐만 아니라 세계와 모든 역사까지 완성시킨다.” (신학연구도서4권 조직신학 하권, 황승룡, 한국 장로교출판사, 503-504쪽)
1. 부활의 중요성 : 제자들이 행위와 예수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있어서 이렇게 전격적으로 변화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신약의 대답은 예수께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부활은 초대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였다. 최초로 보도된 기독교 설교는 부활의 사실과 의미를 선포하는 것이었다(행 2:14~36)
2. 부활의 사실성 : 만일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속행위들의 긴 과정은 무덤 속에서 끝나버리고 만다.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확신도 가질 수 없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 전체적인 본질.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본질을 포함한다.(황승룡교수의 그리스도론, 452~456쪽 한국장로회출판사)
7. 조석만교수
조석만 교수는 부활의 교리가 기독교 복음의 정점을 이루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부활이 없다면 복음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서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 로마서 1장의 서두에서 보면 부활의 교리는 기독교 복음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신앙의 내용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사도행전 전체와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초대교회에 있어서 이 부활교리는 특히 선교의 핵심적 내용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12-19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부활이 없으면 복음이 될 수 없으며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무의미한 것이다.기독교의 소망은 어디까지나 부활신앙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신학 하, 조석만, 도서출판 잠언, 1138쪽)
8. 박윤선 박사
박윤선목사의 다음 주장은 아주 충격적이며 참신한 선포와 같은 내용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승리하였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부활신앙이 아니라면 기독교회 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바빙크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살지 못하셨다고 말한다면 죄악의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정복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승자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탄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으셨다는 부활신앙이 아니었다면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확실하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79-280쪽)
박윤선목사는 부활이 곧 예수가 메시야와 중보자가 되는 증표가 되며, 사죄와 칭의 의 완성과 보장이 되며, 우리 부활의 보증이며, 기독교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 바빙크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면 그의 부활은 그가 메시야이신 증표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표요, 그의 중보자 사역의 완성이요, 그의 높아지심의 방법이요, 우리의 받을 사죄와 칭의의 보장이요, 우리에게 주실 영적 축복과 은사의 근원이요, 우리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요, 사도적 기독교의 기초이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80쪽)
9. 김준삼교수
– 만약 그리스도의 실제적 부활이 없었고 다른 인간들과 같이 죽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대신해서 구속사역을 주장하는 근거가 없어진다.그리스도가 십자가로서 악마를 격멸하셨다고 말해도, 실제 이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즉 죽음의 세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죽음의 세력이 놓여져 있다고 한다면, 승리하였다는 증명이 없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시므로서 죽음을 격멸하신 사실에 있어서 증거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구속의 완성이 필연적 결과임과 함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증명하는 증거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교의신학, 기독론과 구원론, 김준삼, 도서출판 총신, 94쪽)
김준삼교수는 로마서 4:24-25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구원론에 의하면 칭의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획득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예수가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 믿는 근거가 없어진다고 결론을 말한다
– 셋째, 신자의 칭의, 중생, 부활의 수단으로 연결되어진다. (롬4:24-25,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은 단순하게 문자대로 읽는다면 칭의는 부활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서 우리들이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으심에 의해서 칭의가 일어나지 않고 부활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의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칭의는 어디까지나 십자가의 죽으심에 있어서 획득되어진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만약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지 않았고 부활이란 사실이 우리들에게 제시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믿는 근거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의롭게 되어지지 않는다.하나님은 우리들이 믿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어, 그리고 부활한 사실을 우리들에게 풍부하게 제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부활되어졌다는 표현은 가능하겠다고 보겠다. 이 경우에 있어서 부활이란 성도의 칭의의 수단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교의신학, 기독론과 구원론, 김준삼, 도서출판 총신, 95-96쪽)
10. 이병철 목사
–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자 자신의 부활이며(요2:19, 10:17,18, 11:25) 성부(롬6:4)와 성령(롬8:11)의 역사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권능이다. 성부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의 사활(死活)로 대속이 완성되었음을 인정하고 선포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와 마귀와 사망을 완전히 이기시고 하나님 율법의 요구와 명령에 완전 복종하시므로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의 대속사역이 유효하기 위하여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야 했다.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사죄와 칭의와 화목의 새 생명 공로 완성이고, 그의 부활하심은 그리스도인들이 영감과 진리로 영생하게 하시는 완전한 대속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완전한 사랑이며 보증이고 계약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의 중생과 성화와 부활이 가능하게 되었다.(이병철, 개혁주의조직신학, CLC, 276쪽)
11. 마틴로이드존스 목사
마틴로이드존스는 부활이 구원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종말적으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부활을 통하여 죄와 악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구원은 몸의 부활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 사실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쓴 이유입니다. 돌아다니면서 몸의 부활이 없고 영적인 부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 구원이 없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여러분에게 처음 왔을 때 전파한 이 믿음에 굳게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전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2쪽)
– 이 부활한 몸의 마지막 특성은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8-49) 부활한 몸은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이 하늘에 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그날이 이르면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3:2)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교리로 인해 완전히 변화될 것이나 여러분의 정체성은 상실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이 보존되어 부활한 후의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 자신일 것입니다.여러분의 구원이 완성되고 여러분의 영은 이미 구원되고 여러분의 몸도 완전히 구속되었을 것입니다. 인류 전체가 전적으로 죄와 악에서 구원되었을 것입니다.오 복되고 영광스러운 날이여! 오 놀라운 구속이여!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8쪽)
12. 루이스 벌콥
루이스벌콥은 이미 조직신학자로서 널리 알려진 개혁주의 학자로서 미국 칼빈신학교 교장이었으며, 그의 저서는 장로교단의 신학교의 조직신학대 교재로 이미 널리 소개되어 있다. 루이스벌콥도 부활이 칭의와 중생, 그리고 성도들의 부활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예수의 부활이 성부의 인치심과 수납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었다고 말한다.
– (3)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시 그들의 칭의와 중생 그리고 마지막 부활과 도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롬4:25, 5:10, 엡1:20, 빌3:10, 벧전1:3) (벌콥조직신학 하권, 71쪽)
– 오히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이 구성요소로서 구속사역의 본질, 따라서 복음사역의 본질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큰 기초석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적 사역은 만일 그것이 전적으로 유효적이었다면, 죽음이 아닌 생명에서 종결되어야만 하였다. 더 나아가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성부의 인치심이었으며 그것은 수납(acceptance)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었다.마지막으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놓여지신 교회의 머리와 보편적 주님으로서 새로운 생활에 들어가신 것이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구의 구속사적 사역의 열매들을 사용케 하셨다. (벌콥조직신학 하권, 74쪽)
13. 웨인 그루뎀
웨인그루뎀은 미국 일리노이즈의 Trinity Evangelical School의 조직신학교수로서, 그의 저서가 우리나라에 여러권 발행되었다. 웨인그루뎀도 루이스벌콥과 마찬가지로 부활이 우리의 중생과 칭의를 보장하여 주며,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여 준다고 말한다.
– 부활 교리의 중요성
a.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을 보장해 준다: 벧전 1:3
b.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를 보장한다: 롬 4:25
c.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도 완전한 부활의 육신을 받게될 것을 보장한다. 고전 6:14, 고후 4:14, 고전 15:20 (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167-170쪽)
14. 마크 드리스콜, 게리 브레셔츠
게리 브레셔츠는 웨스턴신학대학의 신학교수이며 신학 연구 학과장이다. 또한 마크 드리스콜은 시애틀의 마스힐교회를 세운 목사로서 사도행전29장 교회개혁네트워크 대표이고 부활선교 신학협회를 설립한 목사이다.
– 예수님이 지금도 죽어 계신다면 기독교도 죽은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기독교도 살아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전서 15장17절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구주도 없고 구원도 없고 죄 용서도 없으며 영생의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다.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은 또다른 선하지만 죽은 인간에 불과하게 되고, 따라서 이 세상에서나 죽음의 순간에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쉽게 말해서 부활이 없으면 오늘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쉽게 속는 사람들이다. 내세의 부활 생명에 대한 그들의 소망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겠다는 한 죽은 사람을 신뢰하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소망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교리는 의문의 여지없이 매우 의미심장하며 극히 세심한 숙고와 고찰이 필요한 교리이다.(기독교 교리, 마크 드리스볼, 게리 브레셔스 공저, 부흥과개혁사, 371-372쪽)
– 성경은 종종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며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바로 그 권능의 성령을 누리는 것에 대해 말한다.그렇게 하면서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신자들에게 전달된 수많은 복과 유익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단번에 영원히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아는 큰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성화 속에서 밖으로 표출되므로 우리는 더욱 거룩해지며 죄를 이기며 사는 법을 배워 가다가 언젠가 우리 자신이 부활할 때 모든 죄의 존재와 권능과 습관에서 해방되어 영원히 살게될 것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그 때문에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선언될 수 있는 칭의의 원천으로 일컬어진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살아났다고 명백히 진술한다. (기독교 교리, 마크 드리스볼, 게리 브레셔스 공저, 부흥과개혁사, 400-401쪽)
15. 강병두 목사
부활은 그리스도 교리의 핵심이며, 크리스천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가 성립되지 않는다. 즉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과 허무의 표상이 불과하기 때문에 크리스천에게 아무런 삶의 용기를 주지 못한다.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6-19)고 했다. 부활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크리스천의 삶의 목표가 된다는 말이다. 부활이란 죽었던 사람의 몸과 생명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 해설서, 그리스도교 기본교리, 강성두, 글로리아, 334쪽)
16. 김효성 교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속죄사역이 참되다는 것을 확증한다.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선언]되셨으니.” 사도행전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부활 즉 중생을 상징하며 몸의 부활을 확증한다. 베드로전서 1:3,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실제로 이루시는 과정이었다.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지금 살아계심을 증거한다.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살아계신다. 요한계시록 1:18,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히브리서 7:25,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김효성 교수 조직신학 312-313쪽)
17. 오톤 와일리. 폴 컬벗슨
승천이 그의 지상의 상태로 부터 그의 천상의 상태로의 전이를 표시하기 때문에. 부활은 우리 주님의 지상에서의 사명의 최후 최고의 사건이다.1. 그리스도 부활은 예수의 주장의 자기 증명 이다.2. 죄없는 예수의 새로운 인간성이 속죄 제사를 위한 기초를 마련 하셨다.부활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승리를 성취하였다.부활이 탄생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골 1:18. 계1:5) 사실상 그것은 죽음으로 부터의 탄생이요. 죽음의 죽음이었다. 우리의 본성을 취하고 그 안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그것을 소생시키고 살림으로. 이 새롭고 영화된 인간성은 영원한 제사장직의 기초가 되며. 그의 죽음과 부활은 성화의 근거가 된다..3. 부활은 우리의 칭의의 기초를 마련하였다.4. 영화된 그리스도의 인간성 역시 새로운 친교를 위한 근거가 된다.5.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의 부활의 보증이다.
(웨슬리안 조직신학 254~256쪽 도서출판 세복)
18. 김성린 교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1.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확증한다.2. 율법의 요구 충족에 대한 선언이다.3. 부활의 원리 및 그리스도와 합한 자가 부활한다는 사실을 증거한다.4. 부활은 신자들의 칭의. 중생. 소망의 원인이 된다.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으며.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할 수 있었겠는가? 저들이 용기 백배하여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너무나 확실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기독교 교리 개설 180~183쪽 개혁주의 신생협회)
19. 나용화 교수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죄와 사망을 이겼고(고전 15:56. 롬 8:35)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게 되었으며. (롬 4:25)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새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또한 예수가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몸의 부활의 확실한 보증이 됨으로. 우리 자신의 부활을 확신케 되는 것이다.(고전 15:12~16) 그런 까닭에 예수의 부활 하심이 우리에게 복음이다. (기독교 신앙의 진리 221~222페이지 CLC출판사)
20. R.L. 모이어(R.L.Moyer, 1886-1944)
부활이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15장13절).부활이 없으면 전할 것도 없습니다“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고전15장14절).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됩니다“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장14절).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않으셨다면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거짓말쟁이들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고전15장15절).부활은 그리스도, 성경, 그리고 기독교를 입증합니다“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고전15장16절).부활이 없으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고전15장17절).부활이 없으면 죄에 대한 용서도 없습니다“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장17절).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다시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니리“(고전15장18절).만일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인들은 죄인들보다 더 불쌍합니다“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장19절)(부활에 관한 명설교 pp112, 커티스 흐트슨 편저·이선봉 옮김, 생명의 말씀사)
21. 서철원교수
부활복음을 비판하는 서철원교수는 자기 자신의 책에서 부활로 성육신과 죽음이 속죄제사임이 밝혀졌다고 말하며,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여 구원이 성취하였다고 말한다. 자신이 직접 책에 쓴 내용도 잘못된 것인가?
부활로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의 죽음, 속죄제사임을 밝힘 :
그리고 부활하므로 자기의 죽음이 속죄제사였음을 밝혀 세상을 구원하는 직임을 메시아로서 다 수행하였다.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인 인물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로서 죽고 부활하여 구원을 성취하셨다
제2절 초대교회의 신앙고백
베드로:사도적 선포를 공식화
주 예수의 부활 후에 교회는 예수의 전권 주장을 그들의 선포에 수납하였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선생의 교훈을 자기들의 생의 척도로 삼으면서 예수에 관한 설교를 의식적으로 공식화하였다. 이것이 베드로의 예수 선포의 형식으로 나타났다. 이 베드로의 설교의 중심은 하나님의 구원으로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이 방식으로 교리 형성의 시초가 되는 신학적 작업을 이루었다
초대교회: 예수의 행적을 구원사역으로 선포하고 공식화하고 선포
초대교회는 예수의 행적과 구원 사역을 직접 목도하였으므로 그의 사역이 하나님의 구원이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살았다. 예수의 행적과 죽음과 부활이 메시아로서의 사역이었음을 확신하고 선포하였다.
또한 서철원 박사는 사도들이 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구원으로 선포하였다고 반복하여 강조를 한다. 부활이 그의 죽음에 구속을 결합하였다고 말한다
2. 예수 부활자를 찬양함
사도들의 선포의 핵심 : 주 예수의 부활 – 하나님의 구원사역
사도들의 선포와 핵심은 주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였다는데 있었다. 사도들은 언제나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선포하셨다. 베드로가 이 선포를 처음 시작하였는데 다른 사도들과 특히 바울이 이 선포를 그대로 계속 하였다. 베드로는 이 모든 사건의 목격자요 증인이므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드로가 선포의 공식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예수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다 이 선포의 공식대로 선포하였다. 바울도 부활자를 직접 만났으므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자기 선포의 중심으로 삼았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사역으로서 그의 죽음에 구속을 결합시켰다”라고 말한다. 부활은 구속에서 배제될 수 없는 것이며, 심지어 예수는 부활로 말미암아 주님으로, 생명의 주로 고백되고 찬양되었다고 말한다.
예수의 부활 선포 : 그리스도의 실재를 보임 : 생명의 주로 선포
사도들의 선포의 중심은 언제나 주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주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사역으로서 그의 죽음에 구속을 결합시켰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의 약속들의 성취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로 주님으로, 생명의 주로 고백되고 찬양되었다. (서철원교수의 교리사 64~70쪽 총신대학교출판사)
22. 이정현 교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 생명 가운데로 행하게 합니다(골 2:12)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생명 가운데서 산다는 말은. 우리가 죄에서 의롭게 되어 구원받았다는 말입니다. (교리설교 133쪽 도서출판 지민)
23. 이범배 교수
부활에 관한 기독교 교리 사망에서 부활하는데 관한 기독교인이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교리에 근거한 것이다. 사도들은 여기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인의 개별적인 부활을 보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활에 관한 기독교인에 대한 가르침은 신약의 여러 장절들을 근거로 한 것이며. 이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 많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역사의 목적을 나타내는 핵심요소가 된다.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는것을 가르칠 뿐 아니라 장차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같이 육체적 부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장 중요하고 또한 기독교 교리의 기간이 되며 핵심을 이룬다.(조직신학 452~468쪽 새한기획출판부)
24. 로버트 P. 라이튼
부활의 중요성. 그리스도의 부활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하다.첫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현재와 미래의 승귀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 일련의 사건들의 출발점이 되었다.둘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정당성에 절대로 필요하다.사도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한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고전15:1~20).그는 기록하기를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신자들의 믿음과 복음 전파가 헛 것이며. 부활을 선포하는 자들은 거짓말장이이고. 또한 미래의 부활에 대한 어떠한 소망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셋째. 성자께서 십자가 위에서 완수하신 사역에 대한 성부의 승인이 부활에 의해 입증된다. 부활이 없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에서 이루신 것이 인간의 죄로 인해 초래된 빛에 대한 대가로서 하나님에 의해 수납 되었다고 믿을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복음주의 신학개론 P126 기독교 문서 선교회)
25. 브루스 밀른
부루스 밀른은 부활로 아들의 제사장적 사역이 완성되었고, 구속이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부활은 그의 제사장적 사역을 완성한다.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실상 그의 아들의 제사장적 사역에 대해 ‘아멘‘을 공표하신 것이다.(고후1:20) 진정한 구속이 성취되었으며. 따라서 의와 화목과 자유가 죄인들에게 진정으로 주어졌다.(롬4:25) 더욱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혈과 육에 속한 연약한 인간을 저주와 진노와 모든 악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시고 도리어 견실하게 해주신 사실을 본다. 부활은 그의 왕적 사역을 나타낸다. 부활은 그의 미래의 통치에 대한 약속을 구현시키는 사건이다 (조직신학개론 181~183쪽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6. 한성기 교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육체와 영혼의 단순한 재결합으로 된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인간성. 즉 육체와 영혼이 그 본래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회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이름으로 되어진 것이다. 부활은 그리스도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도 장차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첫째 선언적 의미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계약적 의무로서의 율법의 모든 요구에 응하셨다고 하는 성부의 선언이다.그리스도께서 장사됨으로 비하의 신분이 종료되고. 부활하심으로 승귀의 신분이 시작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비하되심으로 이루워야 할 일은 충분히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즉 이는 성부께서 성자의 속죄 사역의 완성을 인정하시고 인간의 죄 값이 완전히 지불되었음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둘째. 표본적 의미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은 앞으로 신자들이 칭의. 영적출생. 미래의 부활에서 일어나게 될 바를 상징한다.셋째. 도구적 의미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중생과 칭의와 마지막 부활의 원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속죄사역의 수행이 완전한 유효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에게 구원의 적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조직신학 297~299쪽 잠언 출판사)
27. 버트L.레이몬드 박사예수님은 요한복음2:19~21. 마태복음 12:40. 16:21(막8:31. 눅9:22) 17:9(막9:9) 17:23(막9:31) 20:19(막10:34. 눅18:33)에서 자신의 부활에 대해서 친히 말씀 하셨다. (마27:63. 막14:58. 눅24:6~7도 보라) 만일 그가 말씀하신 대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가르치신 모든 것들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것이 확실하다. 과연 예수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면 복음은 참이고 또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복음은 거짓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또 만일 실제로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가 부활하셨다고 믿는 “믿음“은 무익하고 헛될 것이다(고전 15:17)이것을 잊으면 않될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렇게 전파할 만한 강력한 이유들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여러 가지 위협. 신체적인 박해 그리고 심지어는 순교까지 당하면서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전파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최신 조직신학 716~730쪽 CLC)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조직신학자들의 견해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모든 조직신학자들이 부활을 가장 중요한 구속의 완성이며, 칭의와 중생의 근간이 되며, 복음의 핵심이 된다고 말한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없을 것이며, 우리가 여젼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며, 심지어 기독교의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이 모두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모두 이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