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닉 운동에 대해서 (3) 율법주의에 대한 비판


                                                                             평이협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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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법에 대한 용어와 개념

 

율법에 대한 용어 - 토라쉐마, 미쉬나, 다라쉬, 미드라쉬, 할라카, 학가다, 탈무드

           

율법에 대한 히브리어는 대표적인 단어가 토라이며, ‘토라는 가르침, 지시, 율법등을 뜻하며, 히브리 정경에서 첫 번째 부분인 모세오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언약에 규정된대로 살아갈 것을 명시한 가르침, 법률을 뜻한다. 그 외에도 미츠와(계명), 다바르(말씀, 계명), 호크(법령, 조서), 미쉬파트(규례, 판단)등도 율법으로 번역된다.

 

그 율법이 말라기 이후 신구약 중간시대에 와서 유대인들의 후손들의 현실적인 적응과 해석의 요구에 따라 인위적이며 추가적인 설명이 추가되었다. 이것을 장로들의 유전”(7:3)이라고 하며, '미쉬나'(헬라어, 파라도시스)라고 불렸다.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 귀환한 유대인들은 에스라와 같은 이상적인 서기관이 지속적으로 필요하였고, 서기관들과 그 후 랍비들이 율법에 대한 관습, 의식, 교훈등에 있는 윤리적이며 법적인 문제를 규례화하게 되었다, 이것을 '다라쉬'(해석)라고 하며, '미드라쉬'(주석)는 성문화된 율법에서 그 의미와 근거를 찾아내는 과정을 뜻한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7:6-10)

 

'미드라쉬'는 성문화되지 않은 율법을 해석한 주석으로서 시민법과 종교법을 다룬 '할라카'가 있었고 '학가다'라는 두가지로 분류되는데, '학가다'는 율법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랍비문학을 뜻한다. 랍비들은 구전과 함께 성문화된 율법을 연구하였고 이것을 암송하는 것을 솨나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미쉬나가 되었다.

 

현재 '미쉬나'는 여섯분야로 나뉘어 63개의 소책자로 구성되어 있다. '미쉬나'는 구약 다음으로 권위가 있는 유대인의 기본이 되며, '탈무드'의 기초가 된다.

 

탈무드

 

'탈무드'는 배움이라는 뜻으로서, 미쉬나와 전통적인 율법 외에 전통적인 내용과 관습이 추가되어 있다. 이 탈무드가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기까지는 AD 500년까지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탈무드는 모세 율법에서 시작하였으며, 크게 바벨론 탈무드와 팔레스타인 탈무드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이 중 대체로 바벨론 탈무드가 더 정확하고 폭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탈무드는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농사법, 절기법, 여성(약혼, 혼인, 이혼등), 손해(민사와 형사법등), 성별(제물, 제사법), 정결법등을 다룬다.

 

탈무드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약 400년 동안 율법학자에 의해서 학습되고 전개된 모든 구전율법의 집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현재 유대인들의 율법이라고 한다면 이 탈무드를 말하며, 방대한 유전과 전승이 탈무드에 포함되어 성문화되었다. 예수님은 특히 유전에 대해서 비난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복음이 주어진 기독교가 유대인들의 탈무드를 높이 생각하여 줄 어떤 이유도 없다기독교는 유대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쉐마

 

쉐마는 원래 신 6:4들으라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는 6:4 구절만을 뜻하였는데, AD 2세기에 이르러 5-9절까지를 포함하여 오늘날도 유대인들에 의하여 암송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6:4)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6:5-9)

 

이 쉐마의 두 절이 신약에서도 율법의 근본적인 주제로 간주되고 있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12:28-33)

 

다시 말하자면 쉐마라는 용어는 유대인들의 율법과 그 의미가 다르다. 이것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쉐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놓고 그 단어의 개념이 유대인의 율법이나 교육의 체계를 뜻하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올바른 용어가 아니다. 쉐마는 신 6:4-9을 뜻하는 좁은 개념이다.

 

2)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의 관계

    

순수한 자생적인 유대인들의 메시아닉 쥬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만, 그들의 구원관은 이신칭의가 아니라, 율법주의이다. 그래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메시아닉 쥬에 대해서 상당히 지지와 선호를 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자체가 기독교로 한걸음 다가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순수한 메시아닉 쥬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며, 삼위일체도 부정하고, 교회관, 종말론, 구원론등 그 교리가 전반적으로 기독교와 다르다.

반면에 메시아닉이라는 단체는 삼위일체와 기독론을 인정하는 기독교이면서 거꾸로 유대주의와 율법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곳이다. 다시 말하여 이 단체는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후퇴한 느낌을 준다. 즉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접하고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최근에 메시아닉에서 안식일과 같은 구약의 절기를 모두 지키고 음식물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를 변질된 교리로 적대시한다. 심지어 짐승의 희생제사를 다시 드려야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쉐마연구원이라는 단체가 나타나 자녀들의 교육을 쉐마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에스라하우스(노우호목사)에서도 음식물 규례가 제2의 복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안식교나 하나님의교회같은 이단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곳은 주로 구약의 성경구절만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구약은 안식일과 유월절등의 명절과 절기를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만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할례를 하나님과의 언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31:16-17)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17:10)

         

위의 구약 성경구절만을 본다면 안식일을 지켜야만 하며, 할례를 하여야만 한다.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안식일과 같은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며, 육체적인 할례는 중요시하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차이점이 있으며 우리는 구약과 신약 중에서 무엇을 따라는 것이 옳은가?

     

특히 구약의 레위기와 민수기는 거의 모든 기록이 제사의 규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신약에서는 짐승 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않으며, 구약의 명절과 절기를 지키지 않으며, 육체적인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과연 구약과 신약이 다른 이유는 무엇이며, 어느 성경구절을 올바른 진리로 보아야만 하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구약에서는 음식물에 대한 규례가 있었는데, 신약에서는 음식물에 대한 규례가 없어졌다. 이러한 폐하여진 것은 매우 많은데,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있었으나 신약에서는 제사장이 없으며, 구약에서는 성전의 지성소에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신약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단뿐 아니라 정통교단에서도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에 대한 개념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착각은 사소한 것이 아니며, 예수의 십자가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에 대한 접근법은 모형론(typology), 즉 신약과 구약의 요소들의 상응성을 알아야만 한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서 우리가 알아야만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몸이며 실체라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게 되는 것, 즉 그리스도로 옷입게 되는 것이 바로 신약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3:19)

   

유월절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12:7) 그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하나님이 넘어가심으로 그 집은 화를 면하였다. 그래서 유월절을 Pass-over 라고 부른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12:13-14)

     

지금도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심판을 pass-over 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실체가 오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은 그림자일 뿐이며 몽학선생이다. 그러나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실체가 되시는 예수가 오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는 예표이며 그림자가 되어지지만, 예수님의 피는 인류의 죄를 pass-over 하시는 영원한 표적이 되신다.

요한복음서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를 보고 한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우리는 과연 그림자이며 예표인 몽학선생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2:16-17)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10:1)

          

유월절뿐 아니라, 안식일도 마찬가지이다. 해마다 드리는 구약의 제사도 온전케 할 수는 없다. 안식일과 유월절등은 그림자이지만, 예수가 바로 실체가 되신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안식일은 그림자이며 예수님의 천국이 곧 실체가 된다. 참 안식은 아직 남아 있는 종말적인 구원을 뜻한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4:9-10)

    

구약에서 오순절은 칠칠절이었고 맥추절이었다. 구약의 맥추절은 보리가 열리는 날을 상징하지만,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이 강림한 날이었다. 구약의 보리는 장래일의 그림자였고 신약의 성령은 실체로 나타난 것이다.

또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모세가 하나님에게 율법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구약의 오순절은 돌판을 받은 날이지만, 신약의 오순절은 믿는 자의 심비에 성령을 받은 열매의 날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와 실체에 대한 개념이다.

아직도 구약의 명절과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오신 실체를 보지 못하고 그림자를 쫓는 사람들이다.

 

3) 율법은 폐하여졌는가?

 

율법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율법을 지금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성경은 범법함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했으니(3:19) 그 약속하신 자손인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율법은 폐하여졌는가 또는 완성되었는가의 문제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자들의 관심사였다.

 

사도바울은 율법이 죄가 아니라고 했고(7:7) 오히려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이라고 하였다(7:12).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은 폐할 수 없으며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하였으며(3:31), 예수님은 율법은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셨다고 하셨다.(5:17)

그러나 율법은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율법의 저주 아래 서시고(3:13)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로 죽으심으로(5:8, 3:24 25)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시키신 것이다(8:2). 십자가가 곧 율법의 성취가 된 것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17)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7:6)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이룩된 구원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율법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다(2:16). 즉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

 

4) 율법의 기능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데, 그렇다면 율법이란 왜 필요하며, 왜 예수님은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율법을 주셨는가? 율법이란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기능이 아니라,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달음이 그 첫째 기능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7)

  

"죄가 율법있기 전에도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5:13)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7:12-13)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명도 없다. 누구든지 율법을 모두 지키다가 오직 하나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모두 죄를 범한 자가 된다(2:10).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3:21)

 

율법이 있으므로 인하여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것이 첫 번째 기능이 된다. 두 번째 기능으로는 율법은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기능을 한다. 다만 이미 믿음이 온 사람에게는 더이상 몽학선생 아래에 있지 않는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3:24-25)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정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세 번째 기능으로서 율법은 성화적인 과정의 삶을 살 수 있는 규범적인 기능을 한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고, 또한 그리스도로 안내하는 몽학선생의 기능을 하였으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율법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모두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가? 구약과 신약에서 달라진 개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그림자와 몸의 차이이며 모형과 실체의 차이이다.

       

5) 구약과 신약에서 달라진 거룩의 개념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거룩의 개념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신약의 복음 시대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이 없어졌다. 구약 시대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법이 있었다.

      

거룩에 대한 구약의 개념은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을 말하였다.

거룩한 옷(35:19)도 있었고, 거룩한 향(30:36)도 있었고, 거룩한 기구(40:9)와 거룩한 장소(6:16)도 있었으며, 거룩한 시간(25:12, 3:13, 5:12)도 있었으며, 거룩한 사람(6:8, 16:7)도 있었다. 심지어 떡(29:34)도 고기(6:26-29), (5:17)도 거룩하였다.          

반면에 신약에서 거룩의 개념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가 얻는 것이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즉 거룩에 대한 구약의 계시는 신약과 다르다. 구약에서 거룩함은 하나님에게 관련된 속성이고, 물건, 장소를 모두 포함한다. 모세는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장소에서 신발을 벗어야했다. 여호와의 궤는 하나님 자신이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누구든지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약에서 거룩의 근본적인 개념은 하나님에게 속한 백성으로서 내면적인 거룩이 강조되며, 그것은 곧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4)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사람들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 1:2)

      

6) 신약 시대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어졌다

     

구약에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별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외에는 이방인이라 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반열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구약의 이러한 율법은 엄격하여 이방인과의 교제와 혼인을 금하였던 것이며, 때로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방인들을 모두 죽여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구별이 폐하여 지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5, 18)

 

신약 시대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으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7)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장소, 즉 성전의 개념이 없어졌다.

    

구약에서도 비록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날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였다. 그곳이 벧엘이었으며, 하나님의 집이었다. 또 시내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기 때문에 거룩한 장소로 불려졌기에 신발을 벗어야만 했다. 동일하게 성막은 회막(a tent for meeting)이라고 불렸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곳(성전)이 따로 있어서 그곳에서 제사장을 통하여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두 세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에 함께 계시게 되었고(18:20),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신다(4:23). 어느 곳이든지 성도가 모인 곳이 성전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 되며,(고전3:16) 또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가 성전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4:21)고 장소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를 말씀하셨다. 또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서, 모든 성도들이 만인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8)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사람, 즉 제사장과 일반인의 구별이 없어졌다.

 

구약의 제사장은 오직 구별된 레위인만이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별은 매우 엄격하게 구별되어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제사장은 언제나 레위인 중에서 아론의 자손만이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없어지고 레위인이 아니더라도 성도는 누구든지 만인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5-9)

 

9) 신약에서는 정하고 부정한 물건과 음식물에 대한 구별이 없어졌다

 

구약에는 부정하고 정한 것의 규례들이 있어서 죽은 시체나 무덤이 부정하고, 경도 하는 여인이 부정하고, 돼지고기나 비늘이 없는 물고기 등도 부정하여서 먹을 수가 없었다. 어떤 것은 부정하여 만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부정과 정결의 규례는 달라졌다. 만약 지금도 부정과 정결의 규례가 있다면 경도하는 여인은 부정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 또한 돼지고기도 먹지 못하고, 비늘이 없는 오징어나 장어, 추어탕도 먹으면 안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14:14)

 

신약에서 음식물에 대한 금지조항은 없어진 것이다. 성경은 혼인을 금하게 하거나 사도바울은 음식물에 대한 규례를 주장하는 자들이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4:1-3)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13:9)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9:10)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2:16-17)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14:2)

 

신약에서 음식물의 정결, 부정의 개념은 내면적인 마음에 달려있으며 모든 음식물이 깨끗한 것이다.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7:19)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1:15)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14:20)

        

신약에서는 음식물에 정결하고 부정한 음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내면적인 마음의 상태로 부정하여지고 정결하여지는 것이다. 심지어 사도바울은 우상숭배에 사용된 제사음식 자체를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제사음식인 줄 알고 문제삼을 때에는 거침이 될 수도 있으므로 먹지 말라고 말한다.(고전8그 이유는 음식자체에 정결과 부정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고전 8:7-10)

 

타종교인이나 불신자의 제식이나 장례식등 행사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물론 그러한 제사에 참석하면 안된다. 그러나 그 음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 음식물을 먹어도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음식을 먹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먹지 말아야 한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25-31)

                 

10) 신약시대에는 거룩한 행위의 구별이 없어졌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했으며, 특히 아브라함에게는 언약의 표징을 요구하셨다. 그래서 둘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횃불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 구약성경에는 옷을 빨거나 몸을 정결케 하는 여러가지 의식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며, 죽은 시체나 어떤 질병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조항도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거룩한 행위는 신약에서 폐지되었다. 이러한 의식과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내면적인 믿음이 거룩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11)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날과 절기의 구별이 없어졌다

  

구약에는 거룩한 날과 보통 날을 구별하였다.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이 있었고, 속죄일과 안식일과 같은 구별되는 날이 있었으며, 이러한 날 중에 특히 안식일에 대한 구별은 철저했다. 만일 안식일을 범하게 되면 돌로 쳐죽이라는 엄격한 법도 있었다. 즉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려면 살인을 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신약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구약의 명절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수고가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도바울이 과연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라고 말한 것인가?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4:10-11)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14:5)

 

그래서 바울은 모든 날이 같다고 선언한 것이다. 신약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은 구약에 미리 예언되어 있다. 이러한 구약의 명절과 절기는 폐하여 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 그 날들의 장래일의 그림자였고, (실체)는 그리스도가 되어진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2:16-17)

 

안식일의 참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유월절은 곧 그리스도가 그 어린양의 실체가 되신다. 구약의 오순절은 그림자였고, 신약에서는 그 실체가 되는 성령이 강림한 날이 되어진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율법주의가될 수 밖에 없으며, 그러나 반대로 율법의 의미와 기능을 모른다면 그 또한 율법폐기론자에 빠질 위험이 있다.

 

12) 구약과 신약의 차이

 

과연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무엇일까? 과연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연 구약의 희생제사와 신약의 예배에 대한 차이는 무엇일까?

구약과 신약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예수의 피흘림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차이이다. 즉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와 예수의 보혈의 차이는 그림자인가 실체인가 하는 차이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만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신약과 구약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 차이점은 내면적이고 자발적인 믿음에 의하여 구별되어진다.

 

구약과 신약의 근본적인 차이는, 옛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안에서 구체화된 반면에 새 언약은 교회 안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옛 언약의 국가는 배타적이며 선택적이지만, 새 언약에서의 교회는 포괄적이며 개방적이다. 구약은 예비적 성격(예표)을 갖고 있으며, 신약은 집행적 성격(성취)을 가진다. 구약은 행위언약이지만 신약은 은혜언약이라는 명칭으로 적용되어진다.

그러나 아직도 구약에만 얽매어 신약의 성취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장님이나 마찬가지이다. 영적 장님은 또다른 장님을 이끌게 되어 둘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구약과 신약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새언약에 사는 하나님의 성도인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2:21-3:3)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할례와 음식물규례와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곳이 갈라디아교회였다. 그래서 지금도 갈라디안이라는 영어단어는 혼합율법주의자를 뜻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2:16-17)

 

초대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율법적인 문제로 논쟁을 하다가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들이 있는 예루살렘에 파송한다. 그 보고를 받고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울분을 토한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5:10-11)

 

베드로는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라고 비판을 한다. 그러자 야고보가 타협안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전도대상에는 이방인들도 중요하지만, 회당에서 글을 읽는 유대인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4가지의 금지만 통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15: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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