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부활체의 형태

Views 28 Votes 0 2019.09.26 22:43:26

장래 부활체의 형태

 

이인규

  

천국 지옥을 갔다왔다는 간증에 보면, 저택에서 스포츠카를 타며, 각종 과일과 희귀한 음식을 먹는다는 간증도 있었고, 몸에 갖은 보석을 감고 흰 드레스를 입고.... 어떤 이단은 구체적으로 외형을 묘사하기도 해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구절은 성경에 없으며, 성경에 없다는 것은 곧 천국에 대해서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까지 몰라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성경적으로만 볼 때에 우리가 예수를 끝까지 진정으로 믿고 천국에 간다면, 우리는 변함없이 부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활체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과 뼈가 없는 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신령한 몸은 강한 몸이며, 썩지 않는 몸이며, 영광의 몸이 될 것이다.

  

1) 부활이 영적부활인가 신체적 부활인가

  

성경은 몸의 속량, 몸의 구속을 말하고 있다.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자, 제자들은 영인줄 알고 무서워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은 영이 아니었으며 예수님은 만져보라라고 말씀하셨으며, 제자들과 생선을 잡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24: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24: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24: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여자들은 앞에 나타난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고 말한다.

   

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제자들은 40일 동안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함께 생활을 하셨다.

    

10: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마리아는 무덤에서 예수가 서 계신 것을 보았으며,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일반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점이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영적인 부활이라고 말하는 견해도 있다.

특히 많은 이단들은 예수를 영적인 부활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교주의 몸 안에 재림예수의 영이 들어와 있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즉 재림예수가 자기 교주라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앞에서 설명한 성경구절에 대해서 반박을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이 잠겨진 방에 나타났다는 것을 보고, 영적인 부활이라고 말하는 견해도 있는데, 어떻게 신체를 가진 몸이 잠겨진 방안에 들어올 수가 잇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영적인 부활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런 일이 사도행전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실제 사건이 아니라 영적인 경우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에서는 실제 몸이 물질적인 장소와 공간을 벗어난 경우도 있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는데 간수들이 볼 수 없게 천사가 옥문을 열어주어 감옥에서 풀려나온 경우가 있었다.

  

5: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5: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5: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또 부활의 몸은 우리가 가진 현재의 물질적인 육체와는 그 속성이 다르다고 본다. 왜냐하면 잠겨진 방에 나타날 수도 있었고(20:19), 갑자기 사라진 경우도 있었으며(24:31),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을 하셨기 때문이다(1:9).

  

2) 신령한 몸은 무엇일까?

  

신령한 몸은 과연 무엇일까?

그 몸은 살과 뼈가 없는 영과는 다르며, 또 우리가 갖고 있는 평소의 육체와도 다르다. 그 몸은 하늘에 속한 형체이며, 일반적인 육체와 달리 썩지 않는 몸이며, 영광의 몸이며, 강한 몸이라고 말한다.

  

고전 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고전 15: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고전 15: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고전 15: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고전 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고전 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고전 15: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성경은 우리의 몸이 홀연히 변화한다고 말한다.

   

고전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고전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우리의 육체를 장막으로 비유하였고, 베드로도 장막에서 벗어난다고 표현을 하였는데, 우리가 하늘의 장막을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장차 입을 그 신령한 몸은 영광의 몸이며 썩지 않고, 죽지 않을 몸이며, 강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벧후 1: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벧후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신령한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성경구절은 비신체적이고, 비물질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신령한이라는 단어가 육체적이라는 단어와 함께 비교하여 사용될 때에는 육체적이라는 단어는 자연적이며, 거듭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여 신령한이라는 단어는 비신체적이고 비물질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해석하기 보다는, “거듭난 사람으로서 성령의 일을 좇는 상태의 의미로 사용된다.

즉 신령한 몸은 영이 아닌 몸을 뜻하지만, 이미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 하늘에 속한 몸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3) 부활체는 평소의 육체적 모습을 갖고 있는가?

    

사실 성경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혹간은 평소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혹간은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였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부활이 평소와 다르게 변화되었다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 성경은 예수님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라고 추측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보는 제자들이 그 모습이 바뀌어서 알아 보지 못했다고 하기보다는, 성경은 제자들의 눈이 가리워졌다라고 표현한다

  

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문제는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는 구절에 대해서, 그렇다면 우리가 평상시에 갖고 있던 병이나 외상등의 흔적이나 상처를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냐? 라고 묻는 견해도 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던 성도는 장래 부활에서 그 몸을 그대로 갖고 부활하는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화형을 당한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화장을 한 성도들은 몸이 없는데, 어떻게 부활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은 썩지 않는 몸, 영광의 몸, 강한 몸으로 변화한다또는 땅에 속한 장막을 벗어난다는 성경구절을 믿는다면 그런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입었던 상처를 부활 후에 그대로 갖고 있었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 10장 본문은 의심을 하는 도마에게 돌아가시기 전의 몸을 보여줌으로서 동일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수님의 배려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는 부활은 하셨으나 아직 승천하여 영화의 몸을 입기 전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어쨌든 예수님의 부활 후의 몸은 과거의 몸과 동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여 준다.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예수님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었으므로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하므로 평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부활을 할 때에 평소의 몇 살 때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만약 예수님이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어 나타났을 때에는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던 그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느 성경은 예수님을 알아 보았다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눈을 가리웠다고 표현하는데, 눈이 밝아지자 예수를 알아보았다고 말한다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이 시간이 날이 새어갈 때라고 했으므로 어두울 때가 확실하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 보았고, 그 후에 베드로도 알아 보았으며, 나중에 제자들은 주님이신 줄을 아는 고로라고 말한다.

    

2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21: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이와 유사한 경우가 있었는데,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그 형체가 해같이 빛나며 옷이 희어지는 급작스러운 변화를 보였는데, 그 제자들은 예수와 모세와 엘리야를 알아보았다.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7:2 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우리가 부활을 할 때에 어느 때의 육체로 변화할 것인가? 20세인가? 40세인가? 660세인가? 아니면 죽기 직전의 모습인가? 죽기 직전이라고 하면, 상당수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이나 병에 시달렸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모습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혹간은 화형에 처해서 죽은 초대교회 성도들, 물에 빠져 죽은 성도들은 그 몸이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어떻게 부활하는가?라고 묻는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반드시 무덤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하며 화장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무덤도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면 그 시신이 화학적, 물리적으로 부패하고 변화하여 거의 흔적조차도 없어진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라고 말할 수 밖에는 없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현재와 동일한 몸으로 부활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들과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평소의 모습을 유지하겠지만, 그 몸은 신령한 몸이며, 영광의 몸, 썩지 않는 몸, 강한 몸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우리가 변화하며, 우리가 다시 살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차이점은 있겠지만, 그 동일성도 유지될 것이다.

   

4) 조직 신학적인 견해

  

성경은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육체와 천국에서 부활한 육체에 대해서 연속성과 동일성이 있느냐는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성경구절이 거의 대부분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나 어느 정도를 유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권위있는 조직신학적인 견해를 살펴보자, 조직신학적인 견해는 대부분 동일성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는 견해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다른 하나는 잠자던 몸과 부활한 몸 사이에는 근본적인 연관성이 있을까? 라는 점입니다. 고린도전서 15(35)에 나오는 땅에 심은 씨를 심는 것에 관한 바울의 논의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땅에 심기운 곡식의 씨와 자란 곡식 사이에는 근본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라고 의문을 제가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화장한 다음 그 가루가 땅에 뿌려져 바람에 날려 흩어진 사람의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은 그 가루들을 어디선가 모두 모아지리라고 반드시 믿아야 하는디 물음으로서 부활교리를 조롱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 가루 중의 일부는 이미 다른 생명체로 넘겨져 아마도 동물들에 의해 섭취되지 않았을까요?”라고 그들은 묻습니다. 부활교리는 동일한 구성요소들로 일으켜지리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사실에 의하면 우리 몸의 실제적인 극히 작은 구성요소들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몸이 7년마다 완전히 바뀐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모의 세포들이 끊임없이 피과되고 분해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20년 전의 몸의 구성요소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몸은 이전의 몸과 완전히 동일한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동일한 몸입니다. 그 외에도 작은 어린이-아기-를 예를 들어 봅시다. 그리고 그 아기가 80세 일 때 같은 사람인지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몸의 지극히 작은 구성요소나 그것들의 배열순서까지 완전히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같은 몸입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기독교문서선교회,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286)

   

(루이스 벌콥)

성경에 의하면 신체의 부활이 있을 것인데,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물이 아닌 근본적 의미에서 현재의 신체와 동일하게 될 신체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위해 새로운 몸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땅에 놓여진 바로 그 몸을 일으키실 것이다. 이것은 부활이라는 용어로부터 추론될 수 없으며, 로마서 8:11이나 고린도전서 15:5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또한 사도가 고린도전서 15:36-38엣 사용하고 잇는 땅에 심겨진 씨 비유에 더욱 암시되어 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는 분명히 자신의 몸이 이전 것과 동일함을 그의 제자들에게 입증하셨다. 동시에 성경은 몸이 크게 변화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부활과 승천 사이의 변천의 시기 동안에 아직 완전하게 영화되지 않았지만, 이미 두드러진 변화를 하였다. 바울은 씨를 뿌릴 때 우리는 장차 얻게될 몸을 뿌리지 않으며, 땅으로부터 동일한 씨를 거두어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장차 일어나게 될 변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땅에 심겨진 씨와 동일한 어떤 것을 수확하려고 기대하지 않는다. 심겨진 씨와 거기에서 성장할 씨들 사이에는 동일성이 있지만 역시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루이스 벌콥, 조직신학 하권, 524)

   

(안토니 후크마)

일찍이 우리는 현재의 육체와 부활 육체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 바 있다. 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연속성과 아울러 차이점도 있다고 한다. 연속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활에 관해 말할 하등의 이유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의 현재의 주민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면 우리는 구태여 부활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게 된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 것이며(고전 15:52) 살고 있는 우리도 변화 될 것이라고(52) 바울이 말한 참뜻은 존재의 두 국면 사이에 어느 정도의 연속성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실상 53절의 언어는 이러한 연속성을 암시할 쭌 아니라 심지어 그런 연속성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바울은 신자들의 부활과 그 후의 교회의 휴거에 대해 묘사한 후에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다. (살전 4:17). 부활이나 변화 후에 주님과 함께 항상 있게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인 것이다. 연속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차이점도 있을 것이다...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기독교문서선교회, 355)

    

(밀라드 에릭슨)

우리가 가지게 될 부활체는 죽음 이후 영 또는 혼에 의한 생존 이상의 어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더 많은 어떤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되살아남이 아니다. 예전의 육체가 이용될 것이다. 어떠한 종류의 변화가 일어나서 새로운 육체가 생겨날 것이다. 이 새로운 육체는 예전의 육체와 어떤 연관성 또는 일치점을 가지고 있기는 아나 다르게 만들어질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신령한 몸(고전 15:44)이라고 묘사하고는 있으니, 더 이상 자세하게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는 씨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식물의 유비를 사용한다. 땅으로부터 움터 나오는 것은 단순히 심겨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의 씨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정체성의 근거가 무엇인자라는 철학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출생 때의 나와 어른이 됐을 때의 나, 그리고 부활 때의 내가 모두 동일인 임을 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분명히 몸의 세포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세포들이 모두 칠년마다 한번씩 완전히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생물학적 세포들이 정체성의 근거라면 어른들은 그들이 출생했을 당시의 그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정체의 연속성이 있다.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대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른이 된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동일인이다. 마찬가지로 비록 부활 때에 우리 몸이 변형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동일인일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울로부터 알 수 있다... 우리의 새로운 몸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 입고 계셨던 몸과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분명히 그의 몸은 십자가에 못박혔던 흔적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보여지고 만져질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의 결론은 분명히 어떤 형태의 불할체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원래의 몸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며, 또한 그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원래의 몸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밀라드 에릭슨, 종말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05-107)

    

게다가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몸과 제자들의 몸이 동일함을 명백히 증명하셨다. 이와 동시에 성경은 그 몸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것도 매우 분명히 하고 있다. 부활 후 승천하시기까지의 중간기 동안 그리스도의 몸은 아직 완전히 영화롭게 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놀랄만한 변화를 겪었다. 바울이 우리가 씨를 심을 때 장차 있게 될 씨를 심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땅에서부터 거두고자 하는 것은 뿌린 것과 동일한 씨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땅에 뿌려진 씨와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동일한 어떤 것을 거둘 것이라고 기대한다. 뿌려진 씨와 거기서 자라나온 씨 사이에는 어떤 동질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역시 놀라 만한 차이 또한 존재한다. 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변화할 것인데,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을 것이라고 하였다. 몸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 변화와 동일상의 유지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의 몸은 칠년마다 모든 요소들이 변화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체의 몸은 그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옛 몸과 새로운 몸 사이에는 어떤 물리적인 연관성이 있겠지만, 이 연관성의 본질은 알 수 없다. (정서영, 조직신학8 종말론, 도서출판 진리, 22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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