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가?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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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글을 올려 삭제를 하고 강퇴를 시켰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교주=하나님을 언급하기 위하여 이러한 주장을 하며, 특히 하나님의 영, 재림예수의 영이 교주에게 임하였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 교주가 보혜사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신사도운동 단체에서는 "하나님을 얼굴을 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이단이 아닐 수도 있지만, 몰라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하여 반박을 목적으로 갑자기 글이 올라왔기 때문에 조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올렸던 글을 몇 개 모아서 다시 편집하여 글을 올립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는 살 자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33:11)

     

또한 성경은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구절이 잘못되었을까요?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딤전 1:17)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2)

   

성경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을 보았다는 구절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24:9-11)

             

그러나 자세히 성경을 보면 본문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았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발 아래만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특별히 모세의 경우를 보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에게 율법을 받으며 함께 6일을 지냈는데, 그도 하나님의 등을 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33:21-23)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얼굴도 등도 없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신인동형어적인 문법입니다.

호크마주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한편 성경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는 살 자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으며(33:20), 또한 실제로 아무도 본 자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딤전 6:16). 그런데 본절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마치 하나님을 본 것으로 나와 있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았다는 뜻이 아니라 아마도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보았거나 혹은 70인역의 번역처럼 하나님이 계신 장소를 보았음을 가리킬 것이다. 이것은 심지어 시내 산 정상에서 하나님과 단 둘이 6일간을 체류한 모세까지도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등'을 보았다는 기록(33:23)을 보아서도 분명해진다. 아뭏든 하나님은 영이시므로(4:24)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은 갖고 있다. (호크마주석, 24:10)

               

옥스퍼드 주석은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24:10 “보니로 번역된 와이르우쳐다보다’ (21:26), ‘알다 (2:19), ‘이해하다, (1:16)는 뜻을 지닌 라아의 단순 미완료형이다. 이는 그냥 스치듯이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 대상을 분명히 목격하고 그가 누구인지를 깨달았음을 암시해 주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이 하나님의 본체를 보았다는 말인가? 이때 그들이 본 것은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보았거나 아니면 이사야 선지자의 경우처럼(6:1) 하나님이 친히 앉아 계신 영광스런 보좌의 한 부분만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본체를 직접 목격하는 자는 그 누가 되었든지 죽음을 면치 못했다 (33:20). 그런 관계로 심지어 시내 산의 정상에서 무려 40 일간을 머물면서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를 나누었던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실체를 직접 보지 못하고 다만 그분의 등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33:23).

그 발로 번역된 라글라이우는 인칭 대명사 이우이라는 뜻의 레겔의 복수형이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의 발들(RSVhis feet) ’ 하나님 의 발들을 가리킨다. 이처럼 이스라엘 대표자들이 바라본 광경은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라 그 본체가 앉아 계신 영광스런 보좌의 아래 부분에 불과했다.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은 사람이 여호와의 얼굴을 보고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3:20).

24:11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

보다’ (46:9), ‘(특별히 하나님을) 목도하다’ (19:26), ‘(제시나 환상을) 깨달아 얄다’ (13:6), ‘기뻐하다’ (57:8), ‘경험하다’ (27:12) 는 뜻을 지닌 하자의 단순미완료형이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대개 보다라고 번역된 라아가 원어 성경에서 1140여 회 사용된 데 반해 본문의 하자는 약 50여회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라아는 대개의 경우 감각적 기관인 눈을 통해서 보았다’, ‘주목했다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하자는 이런 뜻 외에 사랑하는 자가 자신의 연인을 응시하는 것(6:13), 어떤 경힘을 통해서 영적인 깨달음을 갖는 것(36:25 ; 63:2),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표현하는 경우(11:4; 17:2), 계시를 통해서나 죽음 이후에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경우(24:4, 16. 17:15) 등 아주 특수한 경우에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리아가 아닌 하자가 쓰인 것은 이스라엘 대표자들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갔음을 시사한다. (옥스퍼드 주석)

                                 

즉 여러 가지 성경적인 기록으로 추정하여 보면, 칠십 장로들은 하나님이 다른 모습으로 현현하신 것을 보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에도 하나님을 대면한 자로 설명되지만, 그러나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불꽃으로 나타나셨습니다. (3:4) 그 경우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등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을 뵌 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자(천사) 혹은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한 모습을 뵌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야곱, 아브라함등), 이스라엘에게는 구름기둥, 불기둥과 같은 자연적인 형태로도 현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1-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멧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선지자를 보내시기도 하였고, 사사를 보내시기도 하셨으며, 때로는 천사를 보내셨고, 때로는 구름, 불같은 자연적인 현상을 통하여 멧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종계시는 곧 예수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단교주들이 모두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게 되는 날은 천국에서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므로 육신을 가진 우리가 볼 수 없으며, 그의 얼굴을 보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자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두려움에 떨었던 것입니다.

                                         

고전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그러나 성경은 간혹 하나님을 대면했다, 혹은 얼굴을 보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이러한 표현을 비유로 듭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러한 표현은 신인동형어적인 표현이며, 하나님은 얼굴도 등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맞은 편에 섰는지라”(18:1-2)

        

여호와께서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 사건을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있었느니라”(13:2)

         

천사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 인간의 삶의 관계 속에 현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본 자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한 천사는 하나님의 소돔 성 심판사역을 고지합니다.

또 다른 성경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공격하기 직전에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선 어떤 한 사람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5:13). 이와 같이 천사는 인간의 형태를 입고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성경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은 천사를 즉각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선포 혹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천사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적인 예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있는 일이 관찰되어집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32:28)

            

야곱은 사람과 같은 모습(또는 천사)을 하고 나타난 하나님과 씨름을 하였다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야곱이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였을까요?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32:30)

              

그러나 호세야서에는 야곱이 하나님과 겨룬 것을 천사와 겨루어 이긴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12:3-4)

    

또한 창 2117 이하에서 하갈의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소식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후손을 축복하는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천사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축복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약속의 축복이 됩니다.

이렇게 한 번은 여호와하나님이, 한 번은 여호와의 사자가 말하든지 혹은 행동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는 기능적으로 한 인격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래 구절에서는 동시에 한번은 하나님의 사자로, 한번은 하나님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21:17-19)

        

이러한 천사와 하나님의 단일화적인 인격에 대해서 폰라드라고 하는 학자는 인간의 통각 속에 들어오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렇게 천사를 세운다고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천사를 보이지 않게 하실 수도 있으며, 또 보이게 할 수도 있으시는 분입니다.(22:31, 왕하 6:17, 2:13)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천사하나님 자신의 단일화속에서 인격적으로 현현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천사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인격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직접 자기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하나님의 천사는 호렙산 가시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만납니다(3:2). 그리고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킬 것을 고지(告知)합니다(3:10).

          

그러한 표현들은 결정적으로 다음의 구절에서 천사의 인격성은 명백히 드러나게 됩니다.

             

너희는 삼가 그(여호와의 사자)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여호와의 이름)이 그에게(여호와의 사자에게) 있음이니라”(23:21)

         

여기에서 천사의 사역은 이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 인격을 통한 대리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다른 국가를 방문한 한국 대통령 특사는 한국 대통령의 이름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인식되어지는 천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계시하시며 사역하시는 것입다.

        

이름은 그 인격이 되어집니다. 그 옛날 왕의 사신은 왕의 명령(어명)을 전하기 때문에 왕과 동일하게 간주되어 왔던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왕의 사신을 모욕하면 왕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왕의 사신을 죽인다는 것은 곧 전쟁을 의미하게 됩니다. 즉 천사를 통하여 사역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천사를 통하여 그 이름을 선포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구름과 폭풍, 번개 불등으로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하며(15:17, 3:2-6. 13:21, 19:18-19, 24:15-18, 30:27-2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러한 자연적인 형태와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며, 오히려 그러한 자연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때로는 성경에서 하나님은 동산에서 거니시며, 모세에게 하나님의 등을 보여주시기도 하고(33:18-23), 권능의 오른손을 펴시기도 하시며, 야곱과 씨름을 하며, 신인동형어적인 표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외형적인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일까요?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가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외형적인 얼굴과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본 자는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가시적이며 외형적인 형상이 없으시며,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만 국한되어 임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에서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피하여 어디로든지 갈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139:7-10)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139“7-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23:23-24)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궁극적이며 종말적인 시간이 될 것입다.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며(고전 13:12),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입니다(요일 3:2)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에서 주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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