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의 비유풀이

Views 5306 Votes 0 2015.05.14 21:16:06

                                      신천지의 비유풀이

 

                                                                             평이협(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대표

                                                                               한국이단문제연구상담소 전문위원

                                                                                           종피맹(사이비종교피해자연맹) 이단상담소장

                                                                                                                  이인규

  

신천지 1.jpg



1. 성경이 모두 비유인가?

 

성경적이라는 단어가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인데, 성경을 인용한다고 하여도 성경을 정확히 해석하여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단들은 모두 자신들이 성경적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을 잘못 인용하고 있거나 잘못 해석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이단들이 사용하는 속이기 위한 성경해석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갖어야만 한다.

 

(1) 신천지의 비유풀이

 

특히 신천지는 예수님이 항상 비유로만 말씀하셨다고 주장하고, 나아가서는 모든 성경이 비유로 되어있다고 하면서 아래 성경본문을 인용한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All these things)을 무리(to the crowd)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13:34)

 

그러나 성경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수님의 말씀이 다 비유라는 뜻이 아니며, 본문이 말하는 비유는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334절 앞에서 나오는 비유를 뜻한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비유가 모두 일곱가지가 나오며, 마태복음 13장의 뒷부분에는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13:53)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모든 비유는 성경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13장에는 일곱가지 천국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34절 앞에서 언급된 4가지의 비유를 말한다. 심지어 마태복음 13장의 내용도 모두 비유라고 말할 수 없다. 13장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제자들에게 직접 해석하여 풀어주신다. 이 풀어주시는 내용도 비유란 말인가? 13장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은 그날 모여든 유대인들 무리에게 비유로 풀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3: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13: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가 해변에 섰더니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더욱이 본문에서 비유는 그날 모였던 무리에게 하신 비유이다. 예수님이 언제나 비유로만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특히 성경이 모두 비유라는 것은 더욱 아니며, 그날 모였던 무리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4가지의 비유가 모두 비유였다는 뜻이다.

 

많은 이단들이 성경에 비밀이 비유로 감추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 상당히 많은 이단들이 이러한 주장을 할 것이다. 그들이 성경을 비유라고 주장하며, 성경이 비밀이 감추어진 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이 기록된 내용과 달리 해석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교주나 목사만이 유일하게 성경의 비밀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거나, 혹은 그들만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목적이다.

 

신천지 이만희 교주는 누구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가? 그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할 때마다 그 대상이 서로 달라지는데, 천사, 성령, 예수,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 그러므로 이 책의 증거는 사람의 생각으로 연구한 것이 아니요 또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받은 것도 아니며 성경 66권을 기록한 선지자들 같이 필자도 오직 살아계신 주님의 성령과 천사들로부터 보고 듣고 지시에 따라 증거한 것이므로 이 증거는 참이며 진실이다.(이만희, 천국비밀, 머리말에서)

 

- 필자는 주 재림시 등 예비할 말씀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각종 신학 세계를 찾아 다녔으나 가는 곳마다 필자가 찾는 주님의 말씀은 찾지 못했고 모든 모임마다 사람의 모임이요 하는 말마다 사람의 말, 세속의 말뿐이었으며 그 누구 한사람 성경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8:11). 그리하여 필자가 하늘의 하나님을 찾아 나선 배움의 길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보고 듣고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6:45)을 본 책 성도와 천국에 실어 모든 형제들에게 편지로 전하는 것이니 보고 깨달아 그토록 원하는 소망의 나라 천국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머리말에서)

 

- 약 이천년전 사도요한은 당시 터키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계시를 환상으로 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고 오늘날 필자는 주께서 약속하신 예언이 실상으로 응한 것을 보고 성령에게 설명들은 대로 본서에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의 해석과 실상이 참임을 증거하는 바이다.(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머리말에서)

 

물론 신천지에서는 처음에는 이만희 교주의 이름과 정체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이단의 교주들에게는 성경의 비밀을 푸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만일 어느 교회의 지도자가 자신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고 있거나 혹은 특별한 계시를 받아 성경의 비밀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면 그는 이단이라고 말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2) 비유와 계시

 

성경은 곧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계시’(revelation)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포칼뤼프시스가 사용되었으며, 그 뜻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나님 자신과 그 목적, 행동에 대한 지식을 알리고 드러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감추인 것을 드러내다, 베일을 벗기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경이 특별계시라고 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드러내는 내용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보존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전달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성경이 기록된 이유를 성경에서 살펴보자. 하나님은 왜 성경의 기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20:31).

 

즉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두 가지이며 첫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려고 함이며 둘째, 그 이름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으며,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야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장차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성경 66권 전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 성경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능히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하나님은 구약에서 선지자, 예언자, 사사, 제사장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공동체에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였으며, 때로는 천사를 보내기도 하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직접 인도하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그 말씀을 전하셨으며, 그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곧 신약성경이다. 그래서 정통신학은 성경의 완전성과 성취성을 말하며 성경은 특별계시가 된다고 말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1:1-2)

 

즉 성경은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내는 기록이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계시와는 정반대의 뜻이다. 성경은 계시’(아포칼뤼프시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알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16:25-26)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3:9-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1:1)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3:3-4)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16:25-27)

 

그러나 성경의 기록과 달리, 이단들은 성경이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고 주장하며 비유로 풀어야 하고 짝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단들이 이사야 34:16을 인용하여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짝으로 되어있다고 주장하여 왔지만, 이사야 34:16여호와의 책이 아니라 짐승의 짝이라는 것에 대해서 구태여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정명석집단등의 모든 이단들은 신구약이 모두 짝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하여 이사야서 34:16의 짐승의 짝이 성경의 짝이라고 가르치지만, 이사야 본문은 에돔 땅이 황폐하여져서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되며, 레위기에서 언급된 부정한 짐승들이 짝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라는 심판적인 저주의 예언이다.

또한 신천지는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이라는 근거로 아래 성경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3:13-15)

 

본문만 부분적으로 읽어보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기록한 것처럼 이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마 1315절 바로 뒤 16절에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18절부터 예수님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직접 풀어서 해석하여 주신다. 즉 성경은 비유로서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기 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3:13-15 본문은 이사야서를 인용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6:9-10)

 

본문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그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이사야 본문은 타락하고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비판하는 내용이며,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구원의 멧세지를 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며,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하셨던 분이시고, 암탉이 새끼를 날개 밑으로 모으려고 하는 것으로 비유한 적(23:37, 13:34)도 있듯이,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에게 선지자와 사사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6:9절 본문 앞 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6:8)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것을 정말로 원하지 않았다면,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을 숯불로 정결하게 하면서 그를 파송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은 오랫동안 반복하여 그 선지자와 사사들에게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패역함을 주지시켜 왔다. 이사야서 본문이 사도행전에서 바울에게도 인용되는데, 그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비판하면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이스라엘의 회개와 돌아옴을 촉구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천지는 "저희"는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고, "너희"는 신천지 자신들에게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은 이사야서를 인용한 것으로서 "저희"는 유대인들을 말함, "너희"는 예수의 제자들을 말한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너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 즉 이방인을 포함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28:25-28)

  

그래서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기록된 책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1313-15절 뒤에 있는 34-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언급되는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3:34-35)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한 것에 대해서 신천지는 시 78:2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신천지는 시 78:2을 반대의 뜻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78:2-3)

 

즉 신천지는 시 78:2을 통하여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을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나 신천지의 주장과 달리, 78:2의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숨은 뜻을 밝혀준다고 번역하고 있다. 비밀한 말을 발표한다는 것은 비밀을 감추인 그대로 발표한다는 것이 아니라, 곧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밝히고 드러낸다는 뜻이다.

 

[공동번역] 내가 역사에서 교훈을 뽑아내어 그 숨은 뜻을 밝혀 주리라.

[표준새번역]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며, 숨겨진 옛 비밀을 밝혀 주겠다.

[현대인의성경] 내가 비유를 들어 옛날부터 감추어진 것을 말하겠다.

[KJV] I will open my mouth in a parable: I will utter dark sayings of old:

[NIV] I will open my mouth in parables, I will utter hidden things, things from of old

  

비유라는 단어는 파라볼레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파라옆에라는 뜻이며 볼레발로라는 단어의 파생어로서 던지다, 놓다라는 뜻으로 옆에 던져놓다는 의미이다. 파라볼레라는 단어의 의미는 평행, 병렬’(parable) 이라는 뜻으로, 그 원래의 개념은 어떤 사물의 옆에 나란히 던져 놓음으로서 서로 비교하게 하여 그 의미를 깨닫게 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비유의 목적은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알게 하는 것에 있다.

 

특히 마 13장 성경본문에서는 4가지 밭에 대한 비유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일일이 풀어서 해석을 하여준다. 다시 말하여 성경은 비유를 감춘 것이 아니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친히 비유를 풀어서 해석한 것까지 모두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10-12)

 

신천지는 너희(you)와 저희(they)를 구별하여, 마치 너희’(you)신천지저희’(they)'기독교'로 이원론적인 적용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책인가? 성경은 감추기 위한 비밀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 뜻을 깨닫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책(딤후 3:15)이다. 4가지 밭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좋은 밭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13:23)라고 해석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직접 해석하여 준 것을 기록하지 않았거나, 아무도 그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였다면, 성경은 비유를 감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마13장 뒤에서 비유를 마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깨달았다고 답한다.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13:51)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곧 성경이며, 사도들이 전한 예수와 영과 복음이 곧 기록된 성경이다. 이로써 성경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구원을 얻도록 하는 복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래서 성경은 완전하게 성취된 최종적인 계시가 된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사도바울이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을 용납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나무라고 있을 때에, 그 기준은 사도들이 전파하지 아니한예수였으며 너희의 받지 아니한영과 복음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곧 성경이 사도들의 전한 기록이다. 이단들은 기록된 성경을 그대로 전하면 안되기 때문에, 성경에는 짝이 있다고 가르쳤고, 성경은 모두 비유로 되어있다고 가르쳐야만 그 성경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천지는 계시록을 가감하는 자를 저주하는 계시록 22:18-19의 경고가 보이지 않는가?

 

3) 신천지의 성경관

 

신천지 교회가 기독교의 성경관과 다르게 가르치는 세가지 방법을 크게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어를 비유와 짝풀이로 해석하는 방법이며, 이러한 방법의 목적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성경을 조작하여 만들기 위함이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대로 성경해석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오늘 학교에 갔다라는 구절에서 학교극장을 뜻한다고 비유한다면 나는 오늘 극장에 갔다는 내용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창세기 11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구절에서 하늘은 목자, 땅은 성도를 비유한다고 적용시켜서 하나님이 기독교를 만드셨다고 해석하여, 창세기 1장을 기독교가 타락하고 범죄하여 혼돈과 공허, 흑암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계시록의 새하늘과 새땅이 곧 이만희가 신천지 성도라고 적용하는 것이 실제 사용하는 신천지의 해석방법이다.

 

둘째, 신천지의 성경관은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구도, 성령과 악령의 대결구도, 선과 악의 대결구도, 영계와 육계의 구도, 빛과 어두움의 구도, 진리와 비진리의 구도, 참목자와 거짓목자의 구도로 구별하는 이원론적인 해석이며, 이것을 반복적으로 학습시키면서 기독교의 타락과 목사들의 범죄를 부각시키면, 그것을 배우는 교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증오와 반감이 생기게 되며, 그 이단교회가 참교회로 인식되어지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들은 씨가 두가지이고, 그릇이 두가지이며, 나무가 두가지, 저울이 두가지.... 이런 식으로 모든 비유를 두가지로 만들어서 해석을 한다.

 

셋째, 시대마다 적용되는 구원관과 구원자가 다르다고 구별하는 많은 이단들의 방법인데 역시 신천지도 동일한 수법이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예수의 구원사역이 완전히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주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신천지는 이러한 구원관을 배도 - 멸방 - 구원으로 설명한다. 또 이러한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교주를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성경에서 나타나는 용어로 적용시킨다. 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용어는 보혜사, 이긴자, 두 증인, 감람나무, 동방의 의인, 참 목자, 빛 등이다. 이러한 구원관은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라는 이름 대신에 교주 이만희를 대입시킴으로 사도요한은 계시록의 환상만을 기록한 인물로 간주하고, 이만희를 계시록의 실상을 계시받은 유일한 인물로 부각시키는 사이비종교집단의 전용수법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천지의 최종목적은 이만희가 말씀으로 오신 재림예수라는 것이다.

 

2. 예수님의 비유 -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비유가 일곱 개가 나온다. 신천지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칠 때에 가장 먼저 성경관에 대해서 가르치는데, 소위 비유풀이를 가르칠 때에 가장 먼저 가르치는 내용이 마태복음 13장이다. 소위 단어풀이를 가르치기 위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적 해석에 대해서 그동안 다양한 견해들이 있어왔는데, 교회사에서는 소위 영적해석이라고 불리는 알레고리적인 해석법으로서 본문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도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 19세기의 윌리허라는 사람이 성경의 비유에 대해서 한가지 비유에서 한가지의 멧세지만을 유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므로서 비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윌리허의 주장은 알레고리적인 풍유해석에 대해서 비판을 할 수 있는 원칙을 세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비유를 항상 한가지 비유만으로 해석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해석방법은 주어진 본문의 문맥과 배경, 그리고 비유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멧세지를 전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상황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양과 목자의 비유에서 양은 성도이고 목자는 예수님이다. 양은 온순하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목자가 인도하는대로 따르기 때문에 그 속성을 비유한 것이다. 또 예수님은 양들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목자에 대한 비유라는 것은 누구든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양의 다리가 무엇을 비유하고, 양의 눈이 무엇을 비유하고, 양의 털이 무엇을 비유한다고 하는 비유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본질을 벗어난 알레고리 해석을 하는 것이다. 특히 어떤 사람이 이상한 주장을 성경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어느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이상한 비유풀이를 해석하였다면 그는 고의적으로 성경을 짜맞추는 이단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유가 아닌 것을 비유라고 가르치거나, 비유인 것을 비유가 아닌 것이라고 가르치는 경우일 것이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비유풀이는 잘못된 해석이 분명하다.

 

13장의 첫 비유인 본문은 4가지의 밭을 말하고 있다. (1) 길 가 (2) 흙이 얇은 돌밭 (3) 가시떨기 위 (4) 좋은 땅의 4가지인데 이 4가지 밭은 씨가 뿌려진 4가지 밭의 형태를 말하는데, 결국 복음을 받아들이는 4가지 종류의 사람의 마음 상태를 뜻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유는 그 씨의 곡식, 즉 결실을 보기 위함이다. 이 결과가 없다면 씨를 뿌리는 목적이 필요없다. 이러한 비유법은 사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다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 1318-23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비유를 풀어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문이 예수님의 말씀이므로 예수님의 해석이 가장 정답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만 한다.

 

139절에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는 구절도 심오하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인지 혹은 마태의 말인지 우리는 정확히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듣지 못하는 자는 구약에서 기록된 영적인 귀머거리를 뜻할 것이다(참고: 6:10, 12:2, 7:11).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소경(59:10; 4:12; 12:40; 11:25), 영적 귀머거리(6:10; 12:2; 7:11; 28:26)는 죄인의 영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님의 직접 해석하신 풀이를 들어보자

 

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는 씨가 뿌려진 곳의 4가지 종류에 대한 비유풀이를 하시는데, 4가지 종류의 은 말씀을 수용하는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결론에 해당되는 좋은 땅의 경우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즉 우리들에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되라는 멧세지이며, 이것은 천국의 수용적 조건으로서의 말씀을 의미한다.

 

(1) ‘길 가는 땅이 굳게 다져져서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땅을 말한다. 새가 그 씨를 먹는 것을 예수님은 마음에 뿌린 것을 악한 자가 와서 빼앗는다고 해석하고 계신다.

(2) ‘흙이 얇은 돌 밭길 가보다는 약간 좋은 조건으로서 씨가 외부로부터 감추어질 수는 있어서 새가 먹을 수는 없겠지만, 역시 그 뿌리가 내리기 매우 어려운 조건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되 뿌리가 없어서 곧 넘어지는 자로 해석하셨다.

(3) ‘가시떨기 위가시나무 위가 아니라 가시나무가 있는 덤불 안의(among thorns) 땅에 떨어진 것을 뜻하며, 땅에 뿌리는 내릴 수 있지만 옆에서 가시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하자 성장에 방해가 되므로 결실이 어렵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비유에 대해서 말씀은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하는 자라고 해석하신다.

(4) 좋은 땅에 대해서는 뿌리와 결실이 모두 충분한 조건을 가진 곳으로 해석한다. 성경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언급하는데, 그러나 이 결실도 30, 60, 100배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해석으로 볼 때에, ‘말씀은 뜻하며, 4가지 종류의 마음을 뜻한다. 이 비유에서는 신천지의 해석은 틀리지 않는다. 어떤 이단들도 처음부터 이상한 주장을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나 신천지가 해석하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가지의 천국비유에서 모든 씨가 다 말씀이고 모든 밭이 다 사람의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가 된다. 그것은 다분히 고의성과 조작 해석의 의도가 있으며, 마태복음 13장의 본문에 해당되는 첫 번째 비유의 구절만을 볼 때에, 본문에서 언급되는 말씀이며 마음이 옳다. 그리고 본문은 두가지의 멧세지를 전하고 있는데, 그 씨는 뿌리를 내리는 조건과 결실의 결과, 두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1번과 2번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조건의 땅이지만, 3번과 4번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러나 정작 결실을 맺는 조건의 땅은 유일한 4번뿐이라는 것이며, 3가지의 땅은 모두 결실이 없다는 것에서 동일하다.

 

또한 씨는 예수님의 복음이며 말씀이다. 물론 이단들의 새로운 교리나 비유풀이가 말씀으로적용될 수는 없다. 말씀은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전하신 기독교의 복음이며, 예수님의 피로 얻은 새 언약을 뜻한다. 본문을 자칫 잘못 해석하면. 밭은 사람에 의하여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뿌려진 장소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거룩한 수동성’(holy passivity)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간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여질 때에 그것을 듣는 사람에 따라 구별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처음부터 받아들이지도 않고 거절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에서 말씀을 받지만 형식적일 뿐이다. 또한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세상의 욕심에 사로 잡혀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는 부류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즉 마음이 강퍅한 자와 형식적인 신앙과 세상 제물과 욕심이 더 중요한 세가지의 부류가 곧 결실이 없는 땅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좋은 땅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설명시며,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곧 좋은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비유의 본질적인 멧세지는 신앙의 터전이 되는 뿌리 내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성한 믿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실을 말하고 있다.

 

특히 열매는 장성한 믿음의 결과를 의미한다고 보며, 장성한 믿음은 곧 믿는 것(믿음)과 아는 일(이성)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13)

 

3. 예수님의 비유 -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13: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로서 소위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이다.

본문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천국 = 씨 뿌린 사람으로 보면 이상한 해석이 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씨 뿌린 사람의 상황혹은 씨 뿌린 사람의 사례를 천국으로 비유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 성경본문 역시 예수님이 마 13:36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비유를 해석하여 주므로 일부러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 다른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본문에서 마음도 아니며 교회도 아니라 세상을 뜻한다고 예수님이 직접 해석하여 주셨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신천지는 첫번째의 비유와 동일하게 본문의 두 번째 비유에서도 말씀이라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교회라고 해석한다. 이상한 것은 첫 번째 비유에 대해서 밭은 마음이라고 하더니, 두 번째 비유에서는 교회로 바꾸어 버렸으며, 대외적으로는 밭을 마음 혹은 교회라고 가르친다.

 

성경에서 라는 단어는 문자적일 수도 있고 비유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씨에 대한 경우를 생각나는대로 정리하여 보자면, 식물의 씨앗(1:11-12), 말씀(13:23), 생명(고전 15:36), 후손(7:42), 성령(요일 3:9), 하나님의 아들(13:38), 아주 작은 것(13:32)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비유를 어느 한가지 단어의 뜻만으로 비유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코메디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제 밭에 뿌린 사람의 구절에서 제 밭이라는 표현은 이 세상의 소유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이 마음이나 교회라고 해석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예수님의 소유가 아니라 온 세상이 예수님의 소유이며, 또한 본문에서 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을 받을 성도, 즉 천국의 아들들을 말하며, 씨는 추수 때까지 자라나서 비로소 곡식을 맺게 되는데, 그 씨는 처음부터 교회 안에서만 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3장에 대한 본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해석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풀어주셨다.

  

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13: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한 가라지 역시 악한 자들의 아들들, 즉 불의한 자들을 뜻한다고 예수님이 직접 해석하여 주셨는데, 가라지의 씨도 교회 안에서만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뿌려지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은 교회를 위해서만 보내주신 것이 아니며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6-17)

  

가라지에 대해서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라고 성경은 말한다. 즉 불의와 악의 근본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집 주인의 종들이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라고 질문을 한다. 물론 하나님은 악의 근원이 아니시며 악을 창조하시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셨다. 창조한 사람이 타락하였으며, 창조한 천사가 타락하여 사탄이 된 것이다. 5장은 죄가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세상은 처음부터 선과 악이 공존하여 대결구도로 존재하는 이원론적인 구도가 아니다.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적인 구도, 영과 육의 구도, 선과 악의 구도로 구별하는 것을 헬라적인 이원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신천지는 성경공부를 하자고 미혹하여 가장 처음에 이러한 성경관을 가르치는데, ‘하나님=예수=성령=천사사탄=악령이라는 해괴망칙한 이원론을 가르친다. 심지어는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과 천사를 구별할 줄도 모르고 모두 성령이라고 분류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나님과 대립되는 구도로 사탄이 존재한 것이 아니며, 선과 악이 처음부터 이원론적으로 존재하며 대결구도로 양립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처음부터 함께 존재한 것이 아니며, 사탄은 피조물인 천사가 타락한 것이다. 악은 선과 함께 존재한 것이 아니며, 선의 부재(不在)이며 선의 결핍을 말한다.

   

본문에서 잘 때라고 하는 시간은 아무도 모르게라는 의미일 것이다. 원수는 사탄을 뜻하는 것이 당연하며, 곡식이 뿌려져 있는 밭에 가라지의 씨를 덧뿌리고 간 것이다. ‘덧 뿌리고 갔다는 것은 이미 뿌린 씨 위에 한 번 더 씨를 뿌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두 개의 씨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고, 가라지의 씨는 원수에 의하여 몰래 덧뿌려진 것이다.

    

특히 신천지는 구약의 예레미야 3127절을 인용하면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의 두 종류의 씨가 뿌려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물론 신천지 자신들이 사람의 씨’(하나님의 씨)고 기독교는 짐승의 씨라고 이원론적인 해석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엉터리 해석으로서 구약성경의 본문은 두 종류의 씨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내용이 아니다. 신천지는 성경을 본문의 뜻과 전혀 다르게 짜맞추는 엉터리 해석을 상습적으로 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1:27-28)

  

첫째, 13장에서는 천국의 아들들악한자의 아들들이라고 언급되었는데, 예레미야 본문은 사람의 씨짐승의 씨라고 언급함으로 전혀 다르다.

둘째, 예레미야 본문은 마태복음 본문과 같이 예수님이 뿌린 씨와 원수가 뿌린 씨의 두 종류가 아니라, 둘 다 하나님이 뿌린 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셋째, 본문의 뜻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의 두 종류가 서로 다른 씨로 구별되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과 짐승을 둘 다 번성시켜준다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에 대한 약속이다. 그 씨는 후손, 자손을 뜻하며, 본문은 이스라엘과 유다 가문에서 사람(자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짐승(육축)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모두 동일한 회복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는 의미이다.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동번역] 앞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을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 이전에는 자나깨나 이 백성을 뽑고 부수고 허물고 멸하고 해치기만 하였으나, 그만큼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우며 심어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현대인의성경]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 땅에 사람과 짐승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그들을 철저하게 뽑고 파괴하며 허물고 엎어 버리며 멸망시키고 재앙으로 쳤던 것처럼 앞으로는 철저하게 그들을 세우고 심을 것이다.

 

본문에서 씨를 뿌리다는 동사의 뜻은 번성하게 하다, 퍼뜨리다는 뜻이며,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구별되어 존재한다는 이원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본문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엉터리 해석이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서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그동안 내려진 저주와 심판을 사람과 짐승을 땅에서 없어지게 한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 왕이 정녕히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뇨 하도다” (36:29)

   

이는 한 나라가 북방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그 땅으로 황폐케 하여 그 중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함이라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하여 가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되 그들이 울며 그 길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50:3-4)

 

이스라엘은 원래 농경업을 하는 유목민이었다. 그들에게 저주란 사람과 짐승이 살 수 없게 되었다는 표현이고, 축복은 사람의 자손과 함께 육축이 번성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그러한 표현이 상당히 많다.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2:4)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으로 많게 하되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36:11)

  

예레미야 본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또한 마태복음 13장의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멧세지는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다는 것이며, 즉 하나님나라(천국)선택과 유기성을 뜻한다.

  

(1) 하나님은 세상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의인과 불의한 자에 대해서 공존하도록 허용하신다.

(2) 하나님은 종말적으로 의인을 구원하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포기하신 땅이 아니라 악과 불의가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가꾸어지는 좋은 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가라지는 독보리의 일종으로서 싹의 모습이 밀이나 보리와 비슷하여 실제로 이삭이 열리기 전까지는 구별하기 어렵다고 한다. 성경은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가라지를 미리 뽑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곡이 함께 뽑힐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 의미는 첫째, 늦게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들까지 잘못 뽑히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둘째,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의 주권적인 권한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으며 셋째, 심판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혹간은 가라지와 알곡을 비유하여 이단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단을 비판함으로서 이단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고, 이단에 빠진 자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단을 비판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중세 교회사 때와 같이 이단을 죽이고, 공격하고 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심판은 현 세상에서 악을 근절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것은 심판은 예수님의 주권이라는 뜻이며, 현세에서 직접적인 심판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유기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악인을 유기하거나 방치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Justice)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그대로 유기하신다.

제자들은 예수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제안한 것이며, 예수님은 제자들이 직접 뽑겠다는 것을 그대로 두라고 한 것이다. 성경은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라고 말한다.

  

신천지는 일반 교회에 그들의 교인들을 파송하여 교인들을 미혹하여 빼가는 반윤리적이며 반도덕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데, 이들을 추수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본문에서 추수꾼은 나지막날 심판을 하는 천사를 뜻한다. 신천지의 추수꾼들이야말로 마지막날 심판을 받을 악한 자의 아들을이 될 것이다.

즉 본문은 이단도 불의도 범죄도 비판하지 말고 그대로 용납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며, 현 세상에서 직접 심판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심판을 제어하는 의미이다. 세상은 의인과 악인이 모두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이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한 촌에 대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심판할 것을 원하였으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9:54-56)

  

의인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3:10)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성경, 특히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하나의 죄도 짓지 않는 완전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를 뜻하며,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에 의한 은혜에 기인한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5:19)

 

4. 예수님의 비유 -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13:31-33)

 

1) 겨자씨의 비유 :

 

본문의 비유도 천국 = 겨자씨와 같이 문자적인 등식의 비유를 하면 곤란하며, ‘겨자씨의 사례혹은 겨자씨와 같은 상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에 대한 세 번째 비유 역시 씨에 대한 비유이다.

본문에서 는 신천지와 같이 말씀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는 의미로 비유되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어떤 종류의 겨자는 3m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즉 겨자씨의 비유는 씨가 무엇을 비유하였느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씨보다 아주 작은 씨인 것이며, 그것이 매우 크게 성장한다는 하나님나라(천국)의 확장성의 개념으로 비유된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관용구적인 속담에서 겨자씨보다 작다는 의미는 아주 작은 것을 상징하였다고 한다.

  

특히 신천지는 성경본문이 주는 멧세지에는 관심이 없고, ‘가 무엇을 뜻하고, ‘나무가 무엇을 비유하고, ‘가 무엇을 비유하며, ‘가지가 무엇을 비유하느냐는 단어풀이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적은 씨는 말씀으로, 나무를 사람으로 비유풀이를 하고, 새를 으로, 가지를 전도자로 비유하며, 앞 구절의 씨의 경우와 같이, 나무에도 두가지의 종류의 나무가 있다는 결론으로 유도하는데, 기독교의 목자로 비유되는 나무는 사탄의 영이 모이는 곳이고, 이만희로 비유되는 나무는 선한 영이 모이는 진리의 나무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만들고 있다. 결국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나무)에게 영()이 모여든다라는 황당한 결과로 짜 맞추려는 해석을 만드는 것이다. 신천지가 나무를 사람으로, 새를 영으로 비유풀이를 유도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3:16)

 

마태복음 본문이 과연 이라는 뜻일까? 본문은 '='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는 형태를 표현한 것이다. 또 신천지는 아래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나무가 손바닥을 친다고 하였으므로 나무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웃을 수 없는 비유풀이이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55:12)

 

또한 신천지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라고 하였으니 사람이 나무라고 비유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감람나무하고 비유한 것은 사람=나무라는 등식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며,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로 비유한 이유는 그 나무의 속성 중에서 포도열매와 감람유라는 결실을 얻기 위한 결과적인 개념으로 비유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을 무화과로 비유하였으니 과실은 모두 사람으로 비유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님이 이방인을 개로 비유하였으니 사람은 모두 개로 비유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위 이사야 본문에서는 산들과 작은 산들도 노래한다고 하였는데, 나무가 손바닥을 치므로 사람이라고 해석한다면, 산들과 작은 산들도 노래를 발한다고 하였으니 산도 사람으로 해석하여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신천지에서는 산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교회라고 비유풀이를 하는가?

예를 들면 내 마음은 호수이다라는 비유 때문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모두 호수로 해석하거나 호수가 모두 마음으로 비유되지 않는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이런 유치한 비유풀이를 굳이 잘못이라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구약성경에는 크게 자란 나무와 그 나무의 가지에 새가 깃든다는 구절이 많이 있다. 구약성경 구절은(4:11) 일차적으로 큰 제국과 그 제국에 모여드는 많은 나라들과 민족들을 상징하지만, 종말적으로 천국에 비유되었을 때에는 당연히 메시야 왕국과 그 왕국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특히 에스겔 17장의 본문은 메시야왕국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17:23)

 

깃들이느니라라는 단어는 카타스케노오로서 장막을 가리키는 단어 스케노마에서 유래되었다. ‘카타라는 단어는 아래, 을 뜻하며, ‘스케노오살다, 거주하다로서 그 아래에서 산다는 두 단어의 합성어가 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크고 온전한 장막”(9:11)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 누룩의 비유 :

   

본문에서 여자가 누구를 의미하며 누룩이 무엇을 뜻하느냐는 선문선답식의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방교회와 같은 곳은 여자를 음녀와 같은 부정적이고 나쁜 개념으로 해석하고 누룩을 역시 나쁜 개념으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본문에서는 그런 나쁜 의미로 해석할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 특히 신천지는 여자목자라고 비유하는데 이런 식의 비유풀이는 완전히 자의적이며 임의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왜 여자를 목자로 비유하는가? 만약 성경에서 여자라는 단어를 모두 목자로 비유시켜 해석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다. 또한 신천지에서는 누룩심령을 변화시키는 교훈과 말씀이라고 비유하는데,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라고 말했을 때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교훈과 말씀이 없는 자라는 뜻으로 해석되는가? 신천지의 비유풀이 목적은 이만희 교주가 가루 서말에 말씀을 넣었다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조작적인 해석으로서, 사이비집단에서 교주를 신격화시키는 전형적인 방법일 뿐이다.

 

성경에서 누룩은 팽창한다, 확장시킨다는 개념으로서, 좋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나쁜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것은 옳지 않은 사상이 오염되고 확장하는 것을 뜻하며, 누가 보아도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것이다. 누룩은 단지 반죽을 크게 팽창시킨다는 이스트, 효소의 개념으로서, 앞에서 기록한 아주 작은 겨자씨에서 큰 나무로 성장한다는 비유와 동일한 의미로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이 될 것이다.

 

신천지에서는 가루 서말세 사람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만, ‘가루 서말역시 큰 의미는 갖지 않는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로 비유한 것에 반하여, 가루 서말은 약 22-23리터 정도가 되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하루에 필요한 빵을 만들 수 있는 분량으로서, 일반적인 가족 단위의 하루 세끼 분량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라고 말하므로서,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사례를 예로 든 것이다.

신천지에서는 이 가루 서말세 사람으로 해석하며, 6:6보리 석되와 관련시켜서 해석한다. 실제로 고등교육 과정에서는 계 6:6밀 한되는 이만희 교주라고 해석하고, ‘보리 석되는 신천지의 초기 지파장 세 사람을 뜻한다고 해석하였는데, 이 지파장 중에서 윤모씨라고 하는 지파장 한명이 죽자, ‘보리 석되소수의 사람혹은 씨뿌리는 자들로 바꾸었다고 한다. 13:33의 가루 서말과 계 6:6의 보리 석되에서 동일한 것은 ‘3’이라는 숫자 외에는 없다. 13:33’(: 사타)은 에바의 약 1/3의 분량이며, 3 사타는 1 에바로서 약 22.7 리터가 된다. 그러나 계 6:6’(: 코이니케스)는 어른 한사람의 하루 식량으로 약 1 리터가 된다고 한다. 아무 단어나 동일하게 적용시켜 해석하는 신천지의 해석은 이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6:6의 석되(3 리터)가 세 사람이라면 마 13:33의 서말(22.7 리터)7명이어야 맞지 않는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며 공감할 수도 없는 해석으로 참으로 웃을 수도 없는 이상한 해석이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겨자씨와 가루 서말의 누룩의 두 가지로 비유하였을까? 마태복음에서 전자의 겨자씨의 경우에 씨를 뿌린 사람은 대표단수인 ‘a man’이 되고, 반죽에 누룩을 넣은 여자는 대표단수인 ‘a woman’으로 기록하였다. 이것은 농사를 짓는 일은 남자의 역할이고, 요리를 하는 일은 여자라는 관점으로 일상적인 삶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두 가지 비유의 평행구조를 만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비유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된다는 관점이 가장 중요한 멧세지가 되며, 이 비유는 남자와 여자가 하고 있는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사건을 통하여 가능한 많은 청중에게 이해를 시키며 호소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카슨이라고 하는 학자는 이 두 가지 비유에 대해서 전자의 나무 비유는 외향적으로 성장하는 비유를 말하고, 후자의 반죽 비유는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비유를 묘사한다고 하였는데, 그 견해가 매우 동감을 준다.

 

5. 예수님의 비유 - 보화, 진주, 그물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1) 밭에 감추인 보화 :

 

 당시에는 은행이 없었으므로 보물이나 재물을 분실이나 약탈에 대비하여 보관하기 위하여 자신만이 알고 있는 땅의 위치에 항아리나 상자 안에 넣어 묻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유대인의 랍비들 율법에는 만약 밭에서 일을 하다가 보물을 발견하였을 때에, 그 밭의 주인이 소유자라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 대해서 성경은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그가 보화를 발견했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다면 그 보화는 밭주인의 소유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 보화를 숨겨두어야 했고, 가장 먼저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소유하여야만 했었던 것이다. 그 원인은 밭 전체의 가격보다 보화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이 비유에 대해서도 비유풀이 단어놀이를 하고 있는데, ‘보화말씀이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해석한다, 보화는 신천지교회의 이만희 교주 혹은 이만희 교주가 가르치는 말씀이 되는 셈이다. 신천지 비유풀이에서 마음이나 교회가 되므로, 이것을 단어 비유풀이로 그대로 해석하면 신천지 말씀이나 이만희 교주를 갖기 위하여 전 재산을 팔아 신천지 교회를 소유하여야 한다는 뜻이 되고만다. 그러나 성경은 전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밭을 소유한 것이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화를 소유하기 위하여 밭을 사야만 했던 것이고, 보화를 발견한 이후에도 그 밭의 소유는 여전히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본문의 중요한 내용은 전 재산을 파는 것이 아니라, ‘보화를 소유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다. 즉 본문은 천국의 절대적인 가치성을 언급한 것이다.

 

신천지는 처음에는 신천지임을 속이고 감추며 성경공부를 가르친다. 이것에 대해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예로 들면서 숨겨두고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외부에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을 비밀로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다. 그런 코걸이와 귀걸이 식의 해석을 적용시킨다면 돌아가서 자기 집을 모두 팔아 신천지 학원을 인수하라고 해석하는가?

 

2)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

 

본문의 주인공은 일반 장사가 아니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이었다. 즉 주인공의 목적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일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좋은 진주를 찾을 수 있는 전문가적인 안목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찾게 된 것이다. 즉 그가 추구하는 전문성과 추구하는 목적을 만나게 된 것이며, 그는 자기의 소유를 모두 팔아 그 진주를 샀던 것이다. 본문 역시 중요한 멧세지는 소유를 모두 판 것이 아니라 극히 값진 진주의 소유에 있다. 그는 전 재산을 누구에게 준 것이 아니며 그 재산이 모두 소멸된 것도 아니다. 그는 가장 가치있는 진주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본문의 비유도 역시 하나님나라(천국)의 가치성을 언급하는 비유가 된다. 앞의 비유는 감추어진 보물을 소유하기 위하여 밭을 사야 했던 절대적인 가치를 의미하지만, 지금의 비유는 다른 진주를 모두 팔아서 가장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대적인 가치를 뜻하는 것이다.

즉 본문의 비유에서 전자는 우연히 보화를 발견하게 된 경우를 뜻하고, 후자의 비유는 자신이 추구해 왔던 것을 찾은 경우가 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우연하게 가치있는 것을 만날 수도 있고, 자신이 계속 진리를 추구하다가 가치있는 것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보다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될 것이다.

 

3)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

 

그물은 바다에 쳐져 있었으며, 그 그물에는 각종 물고기가 잡혀 있었다. 성경은 좋은 것과 못된 것이 모두 잡혀 있었다고 말하며, 어부가 그것을 선별하는 과정을 비유하고 있다.

 

각종’(every kind)이라는 단어에서 종류’(게노스)라는 단어는 원래 민족, 종족, 자손, 나라를 뜻하는 단어이다. 즉 세상에 쳐 놓은 그물은 유형적인 교회를 상징할 것이다, 실제로 교회에는 여러 가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섞여 있으며, 형식적인 믿음과 거짓믿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성경은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이라고 말한다. 또한 성경은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라고 말한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라는 설명은 못된 물고기가 곧 악인과 동일한 비유로 보아야 한다. 그릇 밖으로 던져지는 고기는 단순히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곧 썩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는 구절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뜻하는 표현이 분명하다.

 

신천지는 바다세상으로 비유한다는 것에서 그것은 옳다. 그러나 그물말씀이라고 비유하고 어부전도자라고 비유한다. 신천지의 해석은 자신들의 소위 추수꾼 전도를 성경적으로 정당한 것처럼 짜맞추는 황당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비유에서 고기를 선별하는 사람은 어부인데, 어부가 전도자를 말한다면 신천지에서는 전도자가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를 선별하여 심판을 하게 되는가? 또한 신천지는 그물이 쳐지는 바다를 세상이라고 해석한다면, 왜 다른 교회에 와서 교인들을 미혹하는가? 본문에서 그물은 심판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선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중요한 멧세지는 단어풀이를 하여 자신들의 비정상적인 전도 교리에 짜맞추는 것이 아니며, 천국의 선별성, 제한성과 함께 최종적인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양과 염소의 구별도 동일한 의미가 될 것이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여덟 번째 비유라고 말하는 견해도 있고, 혹은 마태복음13장의 결론이라고 말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문은 결론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데, 그 이유는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라는 질문과 함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라는 비유는 상당히 난해하다. 그 의미는 (1) 유대인의 서기관으로서 천국의 제자가 된 경우 (2) 천국에서 서기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제자의 경우, 두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어쨌든 유대인의 서기관이라는 율법시대의 직분과 비교를 하기 위하여 복음시대의 제자를 강조하는 의미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유대인의 서기관은 오직 율법에 기준하여 판단하였다. 그러나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그 기준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옛 것새 것에 대해서 옛 것을 구약의 성도, ‘새 것은 신약의 성도로 비유하는 해석도 있으며, ‘옛 것은 율법을 말하고 새 것은 복음을 말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대부분 후자의 해석을 따른다.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곳간’(데사로우스)은 일반적인 창고의 의미보다는 보물창고, 저장소등 값비싼 재물을 보관하는 창고를 뜻한다.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 일획도 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비판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형식화, 외식화, 문자화하는 유대인들이었다. 새로운 복음은 율법을 배척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성취하며 포함하며 내면적으로 적용한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천국에 대한 멧세지는 전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롭게 성취된 것이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은 보물창고에서 새것과 옛것을 꺼내오는 집주인과 같아야만 한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내면적인 믿음과 은혜로서 옛것과 새것의 구별이 없다.

 

마태복음 13장이 말하는 천국에 대한 비유는 다음과 같은 멧세지를 전하기 위함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천국은 선택적인 수용조건에 의한 결실로 받아들여지며, 선택적이며, 확장적이며, 진행적인 개념의 나라로서, 절대적 혹은 상대적으로 최상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선별적이며 제한적인 심판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며, 내면적인 믿음과 은혜에 의한 것으로서 옛 것과 새 것의 구별이 없게 될 것이다.

 

6. 그릇에 대한 비유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64:8)

 

그릇에 대한 비유도 신천지는 이상한 의도와 고의적인 목적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신천지를 하나님의 그릇이라고 해석하여 진리를 담고 전하는 사람으로 보며, 기독교를 사단의 그릇으로 해석하여 비진리를 담고 전하는 사람으로 본다. 그러나 이사야 64:8, 9:20-21에서 언급하는 멧세지는 그릇이 무엇을 담느냐는 내용도 아니고, 두 가지의 그릇으로 구별하자는 것도 아니며,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관계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뜻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역사하시는 주권적인 통치와 권세를 상징한다. 귀하게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은 하나님과 사탄의 그릇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고 사용하시는 것을 뜻한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9:20-21)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18:3-6)

 

신천지는 모든 비유풀이의 목적이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이 뜻하는대로 해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즉 계시록의 내용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 영과 육의 구도, 진리와 비진리의 구도, 선과 악의 구도로 만들어서, 신천지를 전자로 조작하고, 기독교를 후자로 조작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며, 그 하나님의 보좌에 이만희 교주를 앉히기 위함인 목적이며, 그러한 비유풀이에 의한 계시록의 해석을 실상계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천지는 육은 영을 담기위한 그릇이라고 가르친다. 그 결론은 이만희라는 육체에 재림예수의 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신천지 열두지파장에게는 열두사도의 영이 들어오고, 신천지교인이 144,000명이 되면 계시록 144000명의 영이 들어와서 지상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리를 만들기 위하여 그릇에 대한 비유풀이를 가르치는 것이다.

 

7. 해와 달과 별에 대한 비유

 

신천지는 목자’, ‘전도자’, ‘성도라고 비유풀이를 한다. 그 이유는 아래 성경구절을 첫째, 기독교의 멸망으로 해석하기 위함이며, 둘째, 기독교와 신천지의 관계를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으로 비교하기 위함이다. (영적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4:29)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6:12-13)

 

과연 위 성경구절이 기독교가 멸망하는 것이라고 해석이 되는가? 과연 해가 목자이고, 달이 전도자이며, 별이 성도라고 비유되는 성경구절이 있는지 신천지가 제시하는 성경구절들을 모두 상세하게 살펴보자.

위 본문에서 은 종말을 앞두고 문자적으로는 어떤 우주적인 대 변화와 대 재앙이 있을 것을 뜻하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준엄한 심판이라는 개념을 포함한다. 이러한 의미를 시사하는 성경구절은 상당히 많다.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13:9-10)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로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으로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내가 네 고기를 여러 산에 두며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에 채우리로다.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우며 달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32:4-8)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8:9-10)

 

결론적으로 신천지는 성경을 자신들이 의도하는대로 짜맞추어 해석하기 위하여 그들은 단어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해와 달과 별에 대한 그들의 비유풀이로 유도하는 성경구절을 모두 찾아보아 상세하게 살펴보자. 그 성경들은 그렇게 해석하여야 할 어떤 근거와 이유도 없으며, 모두 엉터리 비유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 신천지가 주장하는 해에 대한 비유 : 해가 목자인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4:2)

 

본문에서 는 목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의로운 해는 빛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84:11)

 

본문에서 는 목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뜻한다. 이와 같이 전혀 근거가 없는 성경구절을 막무가내로 제시할 뿐이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1:5)

 

본문에는 해가 언급되지도 않으며, 빛은 목자를 말하지도 않는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진리, 즉 예수를 상징한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16)

 

위 창조에 대한 내용에서 를 목자이며 을 전도자라고 해석할 근거가 있는가? 하나님은 낮의 광명으로 해를, 밤의 광명으로 달과 별을 창조하셔서 빛을 주관하게 하신 것이다. 본문은 문자 그대로 해와 달을 뜻한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12:1)

 

신천지는 계 12:1을 제시하며 해와 달과 별이 모두 비유라고 주장한다. 물론 본문의 해와 달과 별은 비유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해를 목자라고 비유하면, 목자(여자)가 목자()를 입는다는 해석이 되므로 더욱 이상한 의미가 되지 않는가? 더욱이 목자의 발 아래에 전도자가 있고 머리에는 열두 성도의 면류관을 썼다고 해석하여야 하는가?

본문에서 해와 달과 별은 영광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40-41)

 

또한 신천지에서 가 목자라고 인용한 성경구절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를 목자로 해석할 근거가 전혀 없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짜맞추기 해석이 고의적인 조작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2) 신천지가 주장하는 달에 대한 비유 : 달이 전도자인가?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37:9-11)

 

본문에서 해는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을 비유하며, 달은 어머니를 비유하고, 열한 별은 형제들을 비유한다. 어떻게 해가 목자이고, 달이 전도자인가? 요셉의 어머니가 전도를 했다는 성경구절이 있는가?

신천지 이만희 교주는 창 37:9-11을 인용하면서, 계시록의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진다는 구절에 대해서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신천지 영적 이스라엘 열두지파로 대체되는 것이 곧 실상이라고 주장하는데, 해와 달과 별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상징한다면 달로 비유된 요셉의 어머니도 열두지파인가? 해로 비유된 야곱도 열두지파 중에 하나인가? 해와 달과 별이 아닌 요셉지파(7:8)는 무엇이며,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는 무엇인가?

 

또한 신천지는 야곱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렸으므로, 그 의미가 이긴 자라고 주장하며,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사탄에게 이긴 자도 한 목자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단어의 어원이 이긴 자라는 것을 맞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어원은 ’(하나님)이라는 단어와 사라’(이기다, 겨루다)라는 합성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사탄에게 이긴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이긴 자를 말한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32:28)

 

더욱이 계시록 2-3장은 이긴 자라는 단어가 없으며, ‘이기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긴 자이미 이겼다는 과거의 개념이지만, ‘이기는 자는 현재와 장래적인 개념으로서, 2-3장의 이기는 자는 믿음을 지키고 고난과 미혹에서 끝까지 승리한 성도를 뜻한다. 신천지는 계 2-3장의 이기는 자가 단수명사이므로 이만희 한사람을 뜻한다는 웃지 못할 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대표단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녀는 사과를 좋아한다"고 할 때에 미녀는 대표단수를 사용한다.

2-3장에서 언급되는 귀 있는 자도 단수명사이며, 계시록의 일곱교회에는 귀 있는 자가 한명만 있었는가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가 이기는 자’(단수명사)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5)

 

그 다음의 본문에서 칠십인이 전도자였던 것은 옳지만, ‘이라는 단어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신천지가 달을 전도자라고 비유풀이를 함에 있어서, 왜 이 성경구절을 인용하였는지 의문이다.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10:1-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5:14)

 

본문 역시 이라는 단어는 언급되지도 않으며, 본문에서 은 밝히 드러내고 숨기지 못한다는 의미로 비유된 것이다. 신천지가 이 전도자라고 비유하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달이 전도자라고 비유한 성경구절은 단 하나도 없지 않는가?

 

3) 신천지가 주장하는 별에 대한 비유 : 별이 성도인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12:3)

 

본문에서 성도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를 말하며, 그들이 별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별과 같이 영원히 비춘다는 내용이다. 본문은 별이 전도자라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5)

 

본문에서 성도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숫자를 뜻한다.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41)

 

본문은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를 언급하는 내용이며, 하늘에 속한 자도 그 영광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8:10)

 

계시록 810절은 셋째 나팔의 재앙을 기록한 내용이다. ‘이라고 하는 별이 하늘에서 강과 샘으로 떨어져 물이 먹지 못하는 물로 변하여 사람들이 죽어가는 재앙을 기록한 내용이다. 신천지는 위 구절을 성도가 하늘에서 강과 샘으로 떨어지면 물을 먹지 못하는가?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9:1)

 

본문에서 별도 성도와 전혀 관계가 없다. 하늘에서 떨어진 성도 하나가 무저갱 열쇠를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 어느 특정한 단어가 비유로 표현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 단어가 성경전체에서 모두 같은 비유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신천지는 해와 달과 별의 경우와 같이 전혀 관계조차 없는 성경구절을 오용하여 비유풀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신천지에서 이러한 비유풀이를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진다"는 구절(24:29, 6:12)을 기독교가 무너진다라고 비유풀이를 한다.

 

8. 하늘과 땅에 대한 비유

 

신천지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은 모두 비유라고 주장하면서, 하늘이 실제로 지구를 벗어난 우주공간을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신천지는 기독교에서는 하늘을 천국이라고 가르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을 우리의 머리 위에 있는 어느 구름 옆에 있는 하늘의 장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하늘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잇고,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성경에서 언급되는 하늘이라는 단어를 모두 영적인 개념이라고 비유풀이하는 신천지의 해석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내용일 것이다.

 

(1) 기독교가 가르치는 천국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하나님나라, 천국 혹은 하늘나라의 개념은 신천지의 무지한 주장과 전혀 다르다. 영어로는 Kingdom of God, Kingdom of heaven이며, 히브리어로는 말쿠트 야훼가 되고, 헬라어로는 바실레이아 투 데우, 바실레이아 톤 우리논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뜻하는 개념은 원래 하나님의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성경에서는 세가지의 개념으로 설명되어진다.

 

첫째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실제적인 신정통치의 왕국.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적인 성도로 구성되는 내면적이며 영역적인 의미

셋째는 종말적이며 미래적이고 궁극적인 세계의 실체

 

구약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과 동일시 되어진다. 예를 들면 몰록은 암몬의 신이었고 그모스는 모압의 신이었던 것처럼(왕상 11:7),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통치국가였다. 여호와하나님은 만유의 주이시며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지만,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이스라엘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시는 여호와 유일신의 통치적인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민족들과 교제나 혼인을 할 수 없었으며, 땅을 얻기 위한 영역적 전쟁은 곧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동일시 되었으며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죄악의 심판을 의미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언약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었으며, 그들의 장막에 계시는 분이었으며, 나아가서는 그들의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라가 곧 하나님 나라의 실체와 동일시 되어져 왔다. 그러나 그들의 남북조가 멸망을 당하고 포로기를 거치며 그들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살게 되어짐으로서, 이후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위의 실체적이며 영역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충성된 개인들의 내면적인 믿음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간주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때와 연관되어지는 종말적이며 심판적인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겨자씨의 성장에 비유되었으며(13:31) 가루서말에 넣어 부풀어지는 누룩에 비유되었으며(13;33) 그것은 진행적이며 점진적으로 확대되어져 가는 영역적인 개념이다. 또한 밭에 뿌려진 씨앗에 비유되어짐으로서(4:3-20) 선택적이며 궁극적이며 제한적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시하였으며(3:2, 12:28) 또한 사도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내면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서,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의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하였다.(14:17)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

 

또한 성도들을 곧 그의 나라와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된다(벧전2:9. 1:6. 5:10)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며(18:36) 그 나라는 미래적이며 장래적인 의미로 비유하셨으며(19:11 이하) 또한 종말적으로 주님과 만나게 되는 장소로 설명하기도 하셨다.(26:29) 그 나라는 궁극적으로 오직 홀로 하나님만이 높힘을 받게 될 것이며(2:11) 그 분이 몸소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며(11:9) 우리가 주님과 영원히 거할 처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이며 종말적인 장소적인 개념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14:12)

 

주님이 직접 가르쳐 준 기도문은 그 나라가 임할 것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 질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요한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셨으며(3:3.5) 또한 믿는 자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6:33) 또한 성도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한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 나라가 종말적이고 궁극적인 장소의 실체라는 것을 시사하여 주며, 또한 성도들을 뜻하는 내면적이고 영역적인 개념을 포함할 것이다.

 

정통신학적인 기독교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며, 단어의 비유풀이만을 즐기는 신천지는 정통기독교가 하늘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머리 위 우주의 장소라고 가르친다고 왜곡을 시키더니만, 결국은 하늘에 대해서 고의적인 짜맞추기를 시도한다.

 

신천지는 하늘을 장막, 목자라고 해석하고, 땅을 성도라고 해석한다.

그 목적은 다음 항목 (9)번의 창세기의 하늘과 땅, 계시록의 새 하늘과 땅을 자신들의 목적대로 해석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풀이를 위하여 이들은 하늘이라는 단어가 장막, 목자라고 해석될 수 있는 성경구절을 찾아서 인용하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이라는 단어가 성도로 해석될 수 있는 성경구절을 찾아 그것이 마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해석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정확히 성경을 본다면 신천지의 이와 같은 비유풀이 유도는 어린아이들의 장난과 같은 유치한 조작이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천지에서 하늘이 장막, 목자이며 땅이 성도라고 비유풀이를 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2) 하늘

 

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33:20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25:8-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위 구절들은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거나 하늘에 하나님의 장막이 있다는 구절이다. 성경은 너무나 당연하게 하나님께서 하늘 성소나 하늘 장막, 하늘보좌에 계신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성경구절들이 하늘=장막이라거나 하늘=성소라는 등식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고 하여 하늘=하나님이라는 범신론적인 등식이 성립되는가? 하늘에 별이 있으면 하늘=이 되며, 하늘에 구름이 있으면 하늘=구름이 되는가?

 

특히 아래 성경구절은 요셉이 꾼 꿈으로서 해와 달과 열한 별은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어머니와 열한 형제들을 뜻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 꿈의 비유는 요셉이 장차 가족들의 절을 받을 수 있는 높은 신분과 지위가 되어진다는 예언으로서 실제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진다. 과연 아래 성경구절에서 하늘이 목자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가?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만약 성경에서 나오는 하늘이라는 단어를 모두 장막, 목자로 해석한다면 성경은 해석상 어떤 기준도 없는 혼란이 될 것이다. 게다가 또 다른 이단이 나와서 하늘을 자기가 원하는 또다른 뜻으로 비유풀이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될 것이 아닌가?

 

3)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위 성경구절은 누가 보아도 성도들의 몸이 곧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는 내용이다. 위 구절이 =성도라는 뜻인가? 위 구절들은 성령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성전이 되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성도라는 등식을 고의적으로 짜맞추려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55: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6:7-8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위 성경구절이 =성도라는 내용인가? 윗 구절들은 비와 땅의 관계를 비유하여 열매와 채소라는 믿음의 결과를 강조하는 내용으로서 땅이 성도라는 비유풀이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22: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신천지는 위 성경구절에서 땅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했기 때문에 땅은 성도라고 주장한다. 위 문장들은 무생물을 주어로 하는 의인화적인 표현이다. 만약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한다면 하늘도 들으라고 했으니 하늘도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아래 성경구절에서 산, 섬과 광야, 성읍, 촌락, 하늘, , 땅의 깊은 곳, , 산림, 나무는  의인화 되었으니 모두 사람으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성경에서 의인화로 표현된 단어들은 모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가?

 

55:12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42:10-11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44: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또 신천지는 아래 계 13:3온 땅이 이상히 여긴다고 하였으니, 땅이 성도라고 주장한다. 계시록 본문의 으로 번역된 단어는 땅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세상’(world) 혹은 세계를 뜻하는 의미도 갖고 있음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석되어진다.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공동번역]: 세상 사람들, [표준새번역]: 온 세상, [현대인의 성경]: 온 세상 사람들, [KJV]: all the world, [NIV]: The whole world

 

9. 황당한 비유풀이 - 창조론

 

1) 천지창조에 대한 신천지의 황당한 비유풀이 :

 

신천지는 어떤 곳인가? 과연 성경대로 믿는 곳인가?

그들은 창세기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기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성경의 창세기는 신천지 이만희를 예언한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가르쳤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해석을 정당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신천지에서 처음 성경의 비유풀이를 배운 사람들은 신천지의 이런 비유풀이에 대해서 앞뒤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라고 평가하며 재미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비유풀이는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부분적인 구절만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억지 짜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교회의 평신도들이 평소에 성경공부를 했거나, 정통신학적인 공부를 교회에서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그 누구도 신천지의 비유풀이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즉 신천지의 주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은 이만희라는 비유풀이이며 첫째날부터 일곱째날은 모두 기독교와 이만희가 만든 신천지장막교회의 비교라는 것이다. 이만희가 직접 쓴 <천국비밀계시>라는 책과 <성도와 천국>이라는 책에서 그 내용을 직접 살펴보자.

 

- 창세기 1장을 아담 이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은 모세로 그는 아담 이후 약 2,500년경 사람이다. 그가 기록한 5경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고 듣고 깨닫는 마음을 허락하지 아니하셨고(29:4) 초림때 오신 예수님도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을 드러내시되 비유로만 말씀하셨고(13:35) 다만 때()가 되면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를 것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셨다(16:1214, 25). 이와 같이 창세기 1장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인간의 심령과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한 창조의 원리를 기록한 것으로 육에 속한 자연계의 창조를 빙자하여 비유와 비사로 오늘날까지 감추어 놓았던 것이다....... 창세기 1장을 표면적인 문자에 매여 육적인 창조라고 고집하는 주장은 과학적, 논리적, 현실적, 상식적으로 모순 투성이며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그릇된 성경관을 갖게 되는 요인만 될 뿐이다.(이만희, 천국비밀계시, 426-427)

 

2) 신천지의 단어풀이 :

 

신천지는 단어비유풀이를 통하여 하늘은 목자 혹은 장막으로 해석하고, 땅은 성도로 해석한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는 기독교의 목자와 성도라는 것이다. 그 기독교가 타락하고 범죄하여 흑암이 왔기 때문에 성령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셨다는 것이다.

 

- 땅은 흙으로 된 사람을, 하늘은 지도자와 장막을 말하는 것이다. 그곳 선민의 장막에 선민들과 함께하시던 하나님이 떠나가시니 공허요 빛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새같이 날아 왔다가 떠나갔기 때문에 그 장막은 흑암한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2)

 

- 뿐만 아니라 계시록 17장에서도 많은 물(바다)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하셨으니 본문의 수면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 하늘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한 후 빛을 찾아 이 세상에 두루 운행하셨다는 뜻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3)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힌 해석을 일일이 설명과 비판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신천지가 성경을 비유풀이로 가르치는 이유와 목적이 바로 이것이며, 성경을 마음대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 위함이다. 다만 한가지 너무 무식한 주장이 있어서 그것을 밝혀 보자.

  

하나님이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느니라”(1:2)를 이만희 교주는 하나님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였다고 주장을 한다. 물을 말하는 는 히브리어 마임인데 성경에서 526번을 사용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문자적인 ’(water)을 의미한다. 물론 물이라는 단어가 간혹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록된 이라는 단어가 모두 세상을 비유한다는 해석은 너무나 황당한 자의적 해석이므로 말할 가치를 못느낀다. 성경에서 이라는 단어 대신에 세상을 대입하여 보면 성경이 얼마나 황당하게 되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운행한다에 대해서 이만희는 아마 무엇인가 찾아 헤메고 돌아다니는 모터보트나 수상비행기를 연상하는 모양인데, 히브리어 라하프는 그런 뜻이 아니라, ‘알을 품다, 날개치다, 흔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공동번역은 휘돌고 있었다로 표준새번역은 움직이고 계셨다로 번역하였고, 현대인의 성경은 활동하고 계셨다로 번역하였다.

다시 말하면, ‘운행하다를 뜻하는 라하프모터 보트나 경비행기와 같이 무엇을 찾아 돌아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마치 새가 보금자리에서 알을 품으며 날개짓을 하는 작은 움직임을 뜻하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 1:2을 포함하여 세 번이 사용되었는데 신 32:11에서는 독수리가 날개를 너풀거리다로 사용되었으며, 23:9에서는 뼈가 떨린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계속 활동하셨다는 것은 독수리가 알을 품는 것을 연상시키며, 즉 성령께서 생명의 잉태를 위하여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는 뜻이다. 이만희 교주는 그저 한문으로만 해석하여 운행한다는 단어를 성령께서 이만희 교주를 찾아 온 세상을 헤메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웃지 못할 일이다. 이만희 스스로가 자신이 쓴 책을 읽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지 한번 묻고 싶다.

다음 신천지의 책들은 결국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이만희 교주의 출현을 위한 예언적인 기록이라는 것이다.

 

- 위의 참조에서 본 바 수면은 바다 곧 세상을 두고 하신 말씀이며 빛은 진리의 소유자를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빛(진리)을 찾으시는 이유는 처음 하늘이 흑암(무지)하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 장막 백성이 배도하여 멸망받아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그 심령이 밤이 된 선민을 깨우쳐 돌이키게 하기 위해 진리의 소유자인 빛을 찾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가 되어버린 선민의 장막에서 한 진리의 소유자를 찾으시는 것은 타락한 아담의 세계에서 노아를 택함 같고 노아 때 비둘기가 바다에서 감람나무 한 잎을 찾은 것과 같으며 부패한(세상이 된) 예루살렘의 선민에게서 예수님을 택함과 같다(9:35).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한 빛 곧 진리(말씀)의 소유자를 찾으시니 이때부터 세상에는 빛과 어두움 곧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이만희, 천국비밀계시, 432-433)

   

- 첫째 날에 빛과 같은 목자를 택하고 둘째 날에 그 목자의 장막을 창조하는 것을 알린 말씀이다. 다음은 궁창을 만들어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뉘게 한다는 말씀에 대해 알아보자.이 말씀은 하나님이 떠난 오랜(깊음) 흑암세계인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목자()를 하나 택하시고 또 세상 중에 새 하늘 장막을 창설하신 후 하나님의 택한 목자가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와 비진리 곧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성경)과 세상 사람의 지식(사이비=주석)의 말을 갈라 심판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소유자와 비진리의 소유자 곧 알곡과 가라지를 가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택한 목자()가 있기 전에 누가 이일을 하겠는가?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이 누구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 이 일은 빛되신 참 목자와 새 하늘 장막이 창조되므로 시작되는 일이다.(이만희, 천국비밀계시, 436)

 

- 첫째 날에는 2절에 본 바 혼돈, 공허한 땅과 흑암한 하늘이 있었다. 이것은 처음 하늘과 땅이 흑암으로 끝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일 후 빛과 같은 목자가 출현하므로 둘째 날과 세째 날에 2절의 하늘, 땅과 구별되는 새로운 하늘과 땅이 생겨났으니 이것이 참조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리고 이 새 땅이 바로 세째 날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드러난 뭍이다. 또 이 뭍에서 바다물이 없어지게 되니 이것을 일컬어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한 것이다. 계시록 1715절에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무리를 많은 물이라 하였다. 이 많은 물이 계시록 12장과 13장에 본 바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갔으니 그곳은 홍수가 난 것이 되고 이후 이들이 증거장막성전의 성도와 싸워 다시 바다로 쫓겨났으니 많은 물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이 된다. (천국비밀계시, 438-439)

 

이만희 교주는 창1:2혼돈에 대해서 두가지 이상의 교리나 사상이 혼합된 것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혼돈’(the existing chaos)을 가르키는 히브리어 토후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영어로 without form 혹은 formless 로 번역되며 형태가 없음을 뜻한다.

또한 신천지는 공허에 대해서 원래부터 있었던 것들이 떠나간 상태라고 정의를 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보후비어있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영어로는 void로 번역된다. 문자적으로나 어원적으로 혼돈과 공허는 "아직 형태가 없는 비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혼돈과 공허는 "아직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해석하는 것이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해석이다. 그래서 아직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혼돈과 공허의 땅을 하나님은 6일 동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으로 창조를 진행하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거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45:18)

 

성경에서 혼돈’(토후)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은 19곳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광야, 사막, 거친들이라는 의미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32:10, 16:18, 12:24, 107:40) 그 이유는 그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장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헛된 일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삼상 12:21, 29:21, 40:23, 41:29, 44:9) 그 이유는 공허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허공(26:7), 빈 것(40:7), 무익(49:4)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공허’(보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오직 세 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혼돈과 함께 사용되었다.(1:2, 34:11, 4:23)

 

성도와 천국이라는 책에서 이만희교주가 쓴 내용을 보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이들의 궁색한 변명에 대해서 쓴 웃음만 나온다. 성경의 저자들이 한글로 성경을 썼는가? 다른 번역성경이나 영어성경, 특히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성경을 보면 신천지의 주장이 황당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이만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성경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기록된 바 그 예언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질 말씀이라면,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의 말씀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대한민국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정확하게 기록했을 터이고, 또한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성도라면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9)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1), 3절에서는 빛을 지으셨다.

빛을 만드셨다는 것은 그 전에 어두움만이 있었다는(빛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 이후의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이 거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조성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물과 물을 나누시고, 물과 뭍을 나누시며, 달과 해와 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식물(食物)을 위하여 열매와 채소등과 짐승들을 창조하신다. 이것은 창조가 엿새 동안에 진행 중이었다는 증거가 되며, 그러한 성경적인 증거는 많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야 비로소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여섯째 날이 되어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이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또 창세기 21절에 가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출애굽기 20장에서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20:1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것이 6일 동안에 진행되었으며 만들어진 것이다.

 

신천지는 빛이 떠났으므로 흑암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1:2흑암은 빛이 떠나간 상태가 아니라 빛이 아직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3절에서야 비로소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3-4). 즉 창 1:2의 흑암은 빛이 떠나간 상태가 아니라 아직 빛이 창조되기 이전을 뜻한다. 성경에서 어두움(darkness)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악 혹은 사단을 뜻하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그런 의미로 비유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때로는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문맥을 통하여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주께서 흑암을 지으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104:20)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45:7)

 

만일 어두움이 사단과 악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없다.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1:18)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비유풀이는 이것 외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저울, 지팡이, , 향로, , 등대, , , , 짐승, 머리, , 꼬리, , 포도주, 감람유, , 인과 나팔, 돌과 우상, 생물과 바람, 부활, 신랑, 예루살렘, 이스라엘등등.... 이러한 단어풀이는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예비적인 학습이 된다.

 

예를 들어보면 모든 비유를 이원론적으로 가르치는데, 씨도 하나님의 씨와 사단의 씨가 있다고 분류하듯이, 그릇도 하나님의 그릇과 사단의 그릇이 있으며, 저울도 하나님의 저울과 사단의 저울이 있고, 불도 하나님의 불과 사단의 불이 있다고 분류하여 가르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신천지의 진리로, 사단의 것을 기독교의 비진리로 비유하여 이것을 계속적으로 세뇌시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증거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거의 부분적인 구절이거나 혹은 억지로 해석되는 구절일 뿐이다.

 

필자는 지면상 모든 비유풀이를 비판할 수 없으므로 초등교육에서 가르치는 몇가지의 중요한 비유풀이만을 설명하였다. 신천지의 비유풀이를 살펴보면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비유로서, 신천지가 인용하는 성경해석이 대부분 엉터리 조작이라는 것을 독자들이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필자의 설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구태여 모든 비유풀이를 일일이 비판할 이유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다고 본다. 신천지는 동일한 단어가 혹시 비슷하게 비유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을 인용하며, 혹은 그런 비유를 찾을 수 없을 때에는 억지 해석으로 적용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성경해석은 신천지만이 사용하는 해석이 아니며, 이단들이 그동안 사용해 왔던 전용수법이다. 특히 통일교나 정명석집단, 하나님의 교회, 전도관이나 장막성전등의 교리를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하다

  

10. 계시록이 봉하여진 비밀인가?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이 비밀로 인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말세가 되면 그 이단단체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들어도 그러한 주장이 황당한 주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단들은 그러한 주장을 성경으로 짜맞추는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초신자들이 미혹되고 있다. 이러한 수법을 가장 잘 사용하는 곳이 바로 신천지이다. 성경이 모두 비유와 짝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계시록의 비밀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계시록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이만희교주라는 것이다.

 

-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2, 3,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이다. 천하만국은 계시록 10장에 기록한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한 목자 앞으로 나아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소성 받아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14)

   

1) 계시록이 봉하여 졌다는 주장 :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5:1-5)

 

신천지에서는 위에서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이 바로 계시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5장의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다. 계시록 5장은 사도 요한이 구약의 에스겔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2:9-10)

 

계시록 51절의 책도 안팎으로 썼으며, 에스겔 210절에서 책도 안팎으로 썼는데, Johnson 이라는 성경학자는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안쪽에만 쓰는 경우와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것을 opisthograph(오시스토그라프)라고 불렀으며, 한쪽만 글을 쓰는 두루마기는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비매품이었다..... 두루마리는 촛물로 봉하고,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그 당사자만이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였고 보관되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으며 공개되었다

 

2) 그 책은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기이다.

 

그 책(비블리온, 두루마리)은 장래의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공동번역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 소리"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온갖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이라고 번역하였으며, 현대인의 성경은 "탄식과 슬픔과 재앙의 말"이라고 번역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슬픈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실제로 계시록 6장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일곱인을 떼면서 인류에 닥치게 되는 재앙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자.

사도요한은 계 4:1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고 하늘로 올라가 장차 될 일을 보게 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4:1)

 

즉 사도요한이 하늘 보좌로 올라가서 본 것이 바로 계시록 5장이다. 만일 그 책이 계시록이고 사도요한이 쓴 것이라면 상식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가? 사도요한이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고 쓴 것이 요한계시록인데, 그 환상에서 본 책이 아직 쓰지 않은 계시록일 수가 있는가? 또 계시록을 쓴 저자가 사도요한이면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을텐데 왜 요한은 그 봉한 책을 펴거나 볼 수가 없어서 우는가?

 

또한 신천지는 계시록이 봉하여진 비밀이라는 성경적인 근거로 다음 성경구절도 제시한다.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29:11-12)

 

본문은 요한계시록이 봉하여졌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계시를 알려 주었으나 그들은 마치 봉한 책으로 간주하여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동번역] 이렇듯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계시되었지만, 그것은 밀봉된 책에 쓰여진 말씀과 같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므로 모든 예언적인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해진 책과 같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이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밀봉된 두루마리의 글처럼 될 것이다.

 

신천지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대부분 앞뒤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3) 성경은 계시록이 봉인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있는 가감에 대한 경고에서 이 책에 대해서 계시록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사도요한이 책을 다 쓰고 마지막 결론을 맺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2:18-19)

 

물론 이단들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경을 짜맞추는 것이 곧 가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22장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단들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22장의 이 책은 당연히 계시록이며, 저자인 사도요한에게 천사는 "이 책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봉하여지지 않은 것으로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의 계시록이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22:10)

 

4) 반문에 대해서

  

신천지는 이렇게 반문한다.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으면 당신들은 계시록을 다 아느냐? 정통기독교는 왜 계시록에 대해서 해석이 다른가?"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거의 억지 혹은 무지에 가깝다. 계시록이 봉인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가 그 내용을 모두 획일적으로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증거로, 성경에는 사도 베드로도 사도바울의 편지에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것을 억지로 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초대교회의 은사와 직분 중에는 지혜와 지식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다는 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공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배우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비정상이다. 성경은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은 일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1:26)

 

즉 성경이 봉하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독자 모두 획일적으로 이미 알아야만 한다는 주장은 무지에 가까운 주장이다. 아주 쉽게 예를 들어 이해가 어려운 철학책이 봉하여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읽는 모두가 그 책을 모두 동일하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성령께서 성도를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일상적인 삶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알려 주시거나, 장래의 일을 모두 예언하여 주시거나, 성경 주석이 되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신천지가 이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 특정한 개인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고 봉한 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이 기록한 내용과 다르게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이 모두 비밀이고, 짝이 있으며, 봉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환상계시와 실상계시

   

신천지는 계시를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별한다. 사도요한은 환상계시만을 받고 계시록을 기록하였으며, 이만희 교주는 실상계시를 받았으므로 계시록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계시는 계시일 뿐 환상계시와 실상계시로 구분되지 않는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것은 계시록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 환상계시를 해석하기 위하여 이만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며, 결과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 위하여 비유풀이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환상이라는 단어는 vision을 말하며, ‘실상이라는 단어는 fact, true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계시는 곧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젼(vision)을 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은 당연히 모두 사실(fact)이 되어야만 한다. 구태여 환상계시니 실상계시로 분류할 아무런 근거도 없으며,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거짓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한 용어일 뿐이다.

 

신천지가 비유풀이를 가르치는 이유와 그 결론은 모두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석하기 위함이며, 그것을 신천지는 실상계시라고 부르며 오직 이만희만이 요한계시록을 실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창한 실상계시라는 것은 결국 너무 유치하고 코믹스럽게 그 단어들을 신천지 교회의 인물과 역사로 해석을 하고 있다. 과연 2000년 전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한국 땅의 사이비 교주가 나타나서 이루게 되는 신천지 교회를 위하여 계시록을 썼다고 생각되는가?

만약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의 계시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만희교주를 만나야만 그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신천지가 나타나기 전 2000년 교회사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구원을 받지 못하였단 말인가? 심지어 이만희의 실상을 몰랐던 예수님의 열두제자들과 그 제자들조차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 약 이천 년 전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환상 계시이다. 당시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환상으로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했지만 그 예언이 언제 이루어지는지, 실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만, 예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계시를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한 때가 되면 비유로 비사로 감추어둔 예언 속의 인물과 사건이 이 땅에 실상으로 나타난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예언대로 나타난 실상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니 이것이 바로 실상 계시이다. 이와 같이 실상 계시는 예언이 응할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응할 때에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사도 요한이 이 땅에 살아나서 자신이 기록한 말씀과 그 실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과 같은 입장의 목자가 나타나서 실상 계시를 보고 듣고 증거하게 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21)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1:2)

 

성경은 다 증언하였느니라라고 말하는데, 공동번역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증언합니다.”라고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하였습니다.”로 번역하였다. 계시록 1:19에는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라고 말하였으며, 계시록 22:18-19는 계시록의 내용에 가감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사도요한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환상계시만 받았다는 신천지의 주장은 웃을 수도 없는 황당한 주장이다.

 

한편 이만희 교주가 해석한 실상이 엉터리와 거짓말이며,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만희 교주만이 알고있다는 실상계시와 성경해석은 성경을 조작하고 만드는 황당하고 유치한 것으로서 그 오류가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신천지의 주장이 처음부터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여 준다.

 

예를 들면, 계시록 12:6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에 대해서 실상계시라고 해석하는 것을 들으면 첫째 아이를 낳은 여자를 증거장막성전의 유재열씨라고 주장하는데, 광야에 3년 반동안을 도망간 사건을 유재열씨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에서 3년반 동안 공부를 하고 신학박사를 받아온 사건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유재열은 웨스트민스터뿐 아니라 미국의 어떤 신학대학에서도 공부한 적이 없으며 고등학교 중퇴를 한 학력으로 미국의 신학대학원에서 3년 반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 될 것이다. 이만희 교주는 그것에 대해 질문을 하는 신천지 교인에게 유재열에게 들었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는데, 그렇다면 실상이라는 것이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유재열씨에게 들은 거짓말을 근거로 하여 만든 것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유재열씨가 낳은 아이가 이만희 교주라면 스스로 이단 출신임을 고백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유재열씨는 현대종교의 인터뷰에서 이만희 교주가 누구인지 잘 기억조차 못하며, 이만희 교주가 자신에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내 함께 일하자고 하였으나 거절하였다고 말한다.

  

더욱이 신천지에서 두 증인이며 두 감람나무라고 주장한 홍종효씨는 자신을 자칭 예수라고 주장한 이단중에 하나이며, 더욱이 2012년에 죽었다. 자신을 자칭예수라고 하는 자가 어떻게 두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또한 홍종효씨는 이만희 교주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만희 교주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는가라고 주장한 적도 있었으며 그 편지가 공개되었다. 홍종효는 두 증인과 두 감람나무의 실상에 포함되었다고 제명됨을 반복하였다.

 

계시록 2-3장의 실상해석에서 이만희는 일곱교회라고 하는 실명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주장하며 그 일곱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는데, 두 증인이며 두 감람나무라고 불렸던 홍종효씨는 이만희 교주에게 반박하는 질문의 편지를 공개하고 있는데, 이만희 교주가 밧모섬이라고 주장하는 반포아파트에서 언제 일곱사람에게 편지를 썼느냐고 반문을 하고 있으며, 방송에서는 그 당시 일곱명의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없었는데, 받을 사람이 없는 어느 교회, 어느 누구에게 편지를 썼는가라고 반문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태복음 13장의 "가루서말"에 대한 비유풀이는 이만희를 포함한 지파장이라고 해석하며, 계시록 6장의 네가지 말을 신천지의 지파장으로 비유하여 해석한다. 백마는 이만희이며, 이만희라는 백말을 탄 자가 예수라고 주장한다. 즉 말은 육체이며 말을 판 자는 영이라는 것이다.

 

또 이만희 교주가 예수를 만나 지팡이와 책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년도가 책마다 달라진다.

이만희 교주가 주장한 성경의 실상인물들의 이름, 예를 들면 24 장로, 네 생물과 보리 석되, 두 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