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락교회(김기동, 베뢰아) 연구보고서(3)

 

                                                                                                                                                         이인규

 

이중아담론과 황당한 주장들

 

6. 이중아담론

 

아담은 첫사람이 아니었는가?

베뢰아에서는 하나님이 짐승과 같은 영이 없는 사람을 만들고,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줌으로서 아담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사람을 두 번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창세기 2장은 아담을 다시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1장에서 창조하셨는데 마귀의 역사로 세상이 혼탁해져서 다시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창조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두 번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창세기 127절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중에서 한사람에게 생기를 부어 생령, 즉 아담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노아 이전까지 아담의 후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했다(베아 16,30)(베뢰아원강, 269)

 

- 곧 아담이라는 사람 하나를 뽑으셨습니다.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입니다. 땅에 충만한 사람 중에서 최고로 나은 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생기를 부어 생령, 곧 영적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베뢰아원강, 644- 645)

 

- (316) 창세기 1장은 짐승을 먼저 지으시고 그 후에 사람을 지으셨는데, 2장에는 사람을 먼저 지으시고 짐승을 지어서 그것들을 사람에게 이끌어 오셨다. 이 때까지 아담은 독처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아담을 잠들게 하여 그에게 아내를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지키라고 하시고 곧바로 하와를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시에 지으신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는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지으셨다.(베아21,21) 이렇게 창조된 남자와 여자, 창세기 2장의 아담과 하와는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베아 23,26)(베뢰아원강, 655)

 

- 아담 이전에도 사람은 있었는데 그들은 네피림입니다. 그들은 아담을 얻기 위한 존재였으며 영적사람은 아담부터 시작됩니다. 네피림은 노아때까지 계속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때에 홍수로 호흡있는 모든 피조물을 쓸어버리시는데 이는 네피림을 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를 에덴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 이끌어 낸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그가  생령이 되셨습니다. (베뢰아원강, 695-696)

 

"이와같이 땅에 충만한 수의 사람 중에서 아담 하나를 뽑았으니, 그 아담이 얼마나 개화된 인간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한 사명자를 불러 이 기존적인 인격 위에 항구적 가치를 부여 하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귀론 상. 85페이지)

 

이제 베뢰아의 인간론, 이중아담론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이며 비성경적인가를 증명하여 보자. 베뢰아는 하나님이 동물적인 암컷과 수컷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개화된 인간을 하나 골라 생령을 불어 넣어줌으로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논리를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긴다.

 

1) 성경에서는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다"(2:7)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담은 흙에서 창조된 것이 맞는가? 아니면 짐승적인 인간 중에서 선택되어진 것인가? 어원적으로 볼 때에, 히브리어 아담이란 말의 의미는 "사람, 인류"이며, 또한 아담이란 말의 어원은 흙(히브리어, 아다마)에서 어원을 갖는다. 즉 아담이 흙으로 만들어진 첫 사람이라는 말이다.

김기동목사는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무시하고, 아담이 동물적인 인간 중에서 골라진 사람이라고 주장을 하는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2) 고전15:45과 고전15:47은 왜 "첫사람 아담"이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아담은 땅에서 났다고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7)

 

3) 5:1-3의 기록은 베뢰아의 주장이 오류임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1:27-28)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베뢰아의 주장과 전혀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창세기127절의 사람이 창세기51절에서 이담자손의 계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베뢰아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1:26-27)을 아담이 아니라 짐승과 같은 암컷과 수컷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담의 계보에 왜 동물적인 암수가 등장하는가?

 

4) 3:38의 계보에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라."라고 되어 있다. 성경이 잘못 되어있다고 보는가? 아담의 이상은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 않다.

 

5) 창세기 5장은 아담자손의 계보라고 하면서 창세기127-28절의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은 히브리어로 아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1:26-28) 그들의 이름을 사람(아담)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5:1-3)

 

6)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영이 없는 짐승적인 사람인가? 베뢰아는 창세기1장의 사람이 영이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짐승과 같은 영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인지 아닌지를 설명하여 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6-27)

 

7) 창세기 1장과 2장의 연결을 하여주는 24절의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라는 구절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의 대략을 2장에서 다시 상세하게 설명을 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대략"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톨레톳"으로, 성경에서는 항상 앞문장을 다시 재설명하고자 할 경우에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대략. 계보. 사적등....)

히브리어 "톨레톳"은 창세기 51, 69, 101, 1110, 2512, 361, 372절등에서 앞문장을 다시 상세하게 재설명할 경우에 사용되었다.

즉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과 다른 내용이 아니라, 창세기 1장을 줌렌즈와 같이 다시 상세히 설명하기위한 기록인 것이다.

 

8) 1장과 2장이 같은 내용이며 연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에서 증거하시고 계신다. 베뢰아에서는 예수님 말씀과 김기동목사의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을 믿는가?

마가복음106-8절을 보자....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1:2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2:24)

 

만일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이 서로 다른 사건이라면, 예수님이 마가복음에서 한 구절로 함께 인용하셨을 리가 없지 않는가? “이러므로라는 단어는 앞의 문장을 이유로라는 뜻을 말한다. “이러므로라는 단어는 KJV 영어성경은 For this cause, NIV영어성경은  For this reason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만일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남자와 여자가 창세기 2장의 아담과 하와와 다르다면 예수님이 이러므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한 문장으로 인용할 수 없다.

 

9) 이중아담론이 옳다고 변명하는 성락교회의 주장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6-28)

 

베뢰아는 창세기127절의 지시대명사(그들)가 복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앞문장의 남자와 여자 두 명을 말하므로 당연히 복수를 사용하여야 한다. 남자와 여자를 함께 말하는데 단수가 된다는 자체가 이상한 주장이 아닌가?

그리고 창1:27-28의 남자와 여자, 사람이라는 단어는 모두 단수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원어는 모두 3인칭 단수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하기 바란다..... 만일 김기동목사와 같은 주장이라면 짐승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 사람이라는 단어는 모두 복수가 되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두 번째 베뢰아는 창1:27의 남자(자카르)와 여자(네케바)라는 단어가 동물적인 암컷과 수컷을 말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참으로 엉터리 주장이다.

자카르라는 단어는 동물의 수컷에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며, 17:10, 17:12, 34:15등 수많은 성경에서 사람의 남자로 사용되고 있다.

네케바라는 단어는 동물의 암컷에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12:5, 12:7, 27:4등 수많은 성경에서 사람의 여자에게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 단어들이 사람의 남자와 여자에게도 사용되었다는 성경적인 증거는 수없이 많다. 베뢰아는 그 흔한 히브리어 사전 한권도 없는가? 자카르와 네케바라는 단어는 원래 사람에게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셋째, 베뢰아는 창세기 1장의 사람들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으니 짐승적인 존재라고 주장하였는데..... 베뢰아는 점점 엉터리 거짓 변명만 계속하고 있다.

생육과 번성은 육적인 사람들에게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9:1을 보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28:335:11을 보면 아브라함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노아와 그 아들도 짐승적인 사람이며, 아브라함도 짐승적인 사람인 네피림이었는가?

 

넷째와 다섯 번째의 주장, 베뢰아는 창세기 1장의 식물과 창세기 2장의 식물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뢰아의 주장처럼 창1장에서는 식물이 사람보다 먼저 만들어졌고, 2장에서는 식물이 사람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2:5)

2장에서도 식물은 사람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그것을 재배할 사람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여섯째날) 인간이 창조된 이후에 식물로 주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믿기 바란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1:29)

 

위의 성경을 보면, 창세기 1장도 동일한 설명을 하고 있다.

위 성경구절이 여섯 번째 날에 기록되었음을 성경을 통하여 확인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과연 아담이 짐승같은 사람중에서 선택되어 영을 불어 넣어준 사람일까?

 

7. 김기동목사의 황당한 주장들

 

- 베뢰아 성락교회 김기동목사는 성경을 거의 자신의 임의대로 추측하고 상상하여 해석을 하며, 베뢰아 교리를 만들고 있다. 필자는 베뢰아원강이라는 책을 입수하여 그 책을 읽으면서 김기동목사의 주장을 살펴 보았는데, 그동안 밝혀진 베뢰아교리는 물론, 그 외에도 너무나 황당한 교리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

 

이런 황당한 주장들에 어떻게 적지 않은 목사들까지 미혹되었는지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

 

1)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아브라함의 집에 이삭을 통하여 영적으로 함께 계셨다.

 

하나님의 교회같은 이단들은 이삭을 하나님, 예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김기동목사에게 그러한 주장과 유사한 내용이 나타난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하나님이 오신 표적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삭이 예수가 영적으로 나타난 것인가?

 

- 예를 들어 성경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기한이 이르면 내가 네게 오리나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백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네게 오리라고 할 때에 오신다는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분이 확실히 내 집에 오셔서 내 집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영적으로 알게 됩니다. 성경전체의 흐름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아브라함의 집을 통해 세상에 오셨다가 하늘로 가신 것입니다. 성경을 잘못 보면 아브라함 이야기만 하다가 맙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에게서 나오셔서 아브라함의 집을 하나의 터널로 삼으시고 하나님 우편보좌에 오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베뢰아원강, 159)

 

- (24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오시는 표적이 바로 이삭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독자를 바쳤을 때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독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삭의 출생과 더불어 언약이 아브라함의 가정에 왔고, 그 후손 속에 계속 머물다가 드디어 마리아의 몸에서 육신으로 현현하신 것이다. 육신으로는 아브라함보다 훨씬 후에 마리아의 몸에서 나타나셨지만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고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날 때부터 아브라함의 가정과 그 후손 속에서 영적으로 함께 하신 것이다.(베아 15:3, 베뢰아원강, 161)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4)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도 이 성경을 잘못 오역하여 사라에게 아들이 있게 되는 것을 하나님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을 한다. 그러나 공동번역과 다른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돌아올 때에 이미 사라가 아들을 낳은 것을 알 수 있다.

 

[공동번역] 이 야훼가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느냐?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 내가 다시 찾아오리라. 그 때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다음 해 이맘때에, 내가 다시 너를 찾아오겠다. 그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KJV] Is any thing too hard for the LORD? At the time appointed I will return unto thee,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and Sarah shall have a son.

[NIV]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

 

사라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이 오시는 표적도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오실 때에 그 때에 사라는 이삭이라는 아들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나이가 많아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사라에게 태를 허락하여 아들 이삭을 낳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삭이 곧 여호와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난 다음 성경구절을 제시하면 답변을 하지 못한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26:2)

 

2) 하나님을 부르면 육체의 복과 구원을 받으며, 예수를 부르면 영혼과 육체를 모두 구원받는다는 주장.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자는 육체마다 복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구약사람은 육체의 복과 육체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영혼과 육체 모두 구원 받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만이 영혼을 구원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이름은 심판하는 이름이지 구원하는 이름이 아닙니다(베뢰아원강, 195)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하나님을 부르면 육체의 구원을 받고, 예수를 부르면 영혼과 육체의 구원을 받는다고 구별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호와하나님을 믿던 구약의 성도들은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구약의 성도들은 육체만 구원을 받았고 천국에는 없다는 것인가?

 

3) 무소부재를 어느 곳에나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영광이 미친다고 해석하는 김기동목사.

 

-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무소부재를 말 그대로 안계신 곳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은 지옥에도 계시다는 뜻이 되고만다.(베뢰아원강, 202)

 

무소부재(편재)라는 것은 어느 곳이나 계신다는 것을 뜻한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아는 이러한 용어를 왜 김기동목사는 다르게 해석하는가?

김기동목사는 아래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139:8-10)

4) 하나님의 뜻은 천사에게 우선권이 있으므로, 사람의 의지는 천사에게 양보하여야한다는 주장

 

- 사람의 의지는 때로 천사에게 양보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으로는 사람보다 천사에게 우선권이 있다. 천사는 하늘로부터 온 심부름꾼이다. 인간은 땅에 있고, 천사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왔기 때문에 사람은 천사에게 의지를 양보해야 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의지와 천사의 의지   

김기동목사는 아래 성경구절을 하늘로부터 온 천사에게 인간은 의지를 양보하여 다른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석하는가?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3)

 

5) 사람만이 영적인 존재이므로 생령이 되었다.

 

- 창세기 27절에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가 아니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거기에 생기를 부어 생령, 곧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생기를 부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곧 영을 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만 특별히 생기를 부어 영적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동물의 모양을 만들고 동물에게 생기를 부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은 그냥 동물로 만드신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생기를 붓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이 생령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에게만 생기를 부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베뢰아원강, 268)

 

생령(네페쉬하야)라는 단어는 생명체라는 뜻이며, 동물에게도 생령(네페쉬 하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성경을 보면, 사람만 생령”(네페쉬 하야)이 된 것이 아니라, 짐승들도 동일한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1:21, 1:24, 1:30, 2:19)

만일 생령을 영적인 존재로 해석하려면, 짐승들도 모두 영적인 존재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하이 네페쉬: Living Creature)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2:19)

 

생령이라고 번역된 네페쉬 하야는 살아있는 영이 아니라, 전인적인 “Living Being”이라는 생명자체를 말한다. 흙으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이 불어 넣어주신 생기를 가진 전인적인 존재가 바로 아담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네페쉬 하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1:24)

 

네페쉬 하야(생령)는 창1:20(생물), 1:21(생물), 1:30(생명), 2:9(생물)에서 짐승에게 사용되었다. 그것을 영적존재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6) 김기동목사의 주장대로라면 육체가 없는 영적 존재인 천사와 사탄도 인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하나님과 성령도 육체가 없으므로 인격이 없는가? 또한 사람이 죽으면 사후영혼은 인격이 없게 되므로 의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으며 결국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이 된다.

 

- 이 우주 안에서 만들어진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영적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늘로 돌아갑니다. 영적인 영원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혼은 육과 함께 있다가 육이 죽으면 혼비백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영이 있기 때문에 혼이 흩어지지 않고 영에 잠재하게 됩니다. 이처럼 영이 혼과 함께 있어서 영혼입니다. 육만으로도 인격이 안되고 혼만으로도 인격이 안됩니다. 인격은 육이 있을 때만 존재합니다. 육이 없으면 인격은 없어집니다. 그런데 영이 부여되는 바람에 육이 없어져도 혼이 영과 함께 있으므로 인격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베뢰아원강, 271-272)

 

김기동목사는 자신의 병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 순간 모두 고침을 받지만, 남이 들어와서 만든 병은 치료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김기동목사는 모든 병의 원인은 귀신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7)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120년 생애를 채운다는 주장

 

- 만약 어떤 사람이 두 살 때 죽었다면 그는 귀신으로 백십팔년 정도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다 만수가 되면 자연히 무저갱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을 때 늙어서 죽었다는 귀신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병들어 죽거나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16장에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가 병들어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연락하며 편히 사다가 죽었고 죽어서 음부에 갔습니다. 무저갱은 음부 안에 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속에 들어갔지만, 부자는 음부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아직 불속이 아닙니다. 불못이 아니라 불꽃입니다.(베뢰아원강, 287-288) .

 

불못과 불꽃을 다른 장소로 주장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 불꽃은 불(Flame) 자체를 말하며 불못은 불이 있는 장소를 말한다. 불못에 불꽃이 있는 것이 아닌가? 부자가 불꽃 가운데 고통을 받고 있었다면, 그곳이 불못이 아니라면 부자는 촛불로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 육체가 없어지면 그 사람의 영은 낙원에 가지만, 귀신은 제삼자에게 들어갑니다. 옛날에는 인간이 천년 가까이 살았는데 노아때부터 인간의 수명은 백이십년으로 제한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백이십년입니다. 이는 예수 당시의 자연수명입니다. 불신자가 자연수명을 마치고 죽으면 무저갱으로 갑니다. 그러나 자연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으면 나머지 기간은 음부에 머물렀다가 마침내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베뢰아원강, 286)

 

김기동목사는 아래 성경구절을 보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의 평균 자연수명은 칠십에서 팔십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물론 아주 건강한 사람은 드물게 백세를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강건하면 팔십을 살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노아의 홍수 사건을 앞두고 백이십년을 말한 것은 인간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3)

 

대부분의 정통신학적인 주석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그 이유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인간의 수명은 120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크마주석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 당시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일백 이십년으로 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난 후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경고이다. 따라서 이 기한은 당시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유보 기간이자 동시에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던 것이다”(호크마주석)

 

그래서 [현대인의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을 한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죽어야 할 육체이므로 내 영이 영영 사람에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120년 동안의 여유를 주겠다.’"

 

8) 부자가 무저갱에 들어갔다는 주장

 

-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나는 네게 갈 수 없다. 너와 나 사이는 구렁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부자는 무저갱에 들어갔습니다. 무저갱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도 무저갱은 지옥이 아닙니다. 지옥은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형벌 받을 때에 들어가는 곳입니다(베뢰아원강, 289-290)

 

어느 성경에 부자가 무저갱에 들어갔다고 되어 있는가?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구렁이 있다는 것이지 부자가 깊은 구렁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무저갱은 사탄과 그 사자들이 종말 때까지 임시적으로 갇혀 있는 곳이지, 사람이 죽으면 무저갱에 가는 것이 아니다.

 

9) 예수가 죽음을 담당하였으므로 이제 인류는 죄값으로 죽지 않으며, 저주만 받는다는 주장

 

- 죽음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담당하셨으므로 인류는 이제 죄값으로 죽는 일은 없으나 저주는 담당하여야 한다(베아 15,30) 영적인 일은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담당하셨으나 인간은 죗값으로 육체가 저주를 받는 것이다(베아 16,30)(베뢰아원강, 409)

 

성락교회 교인들은 김기동목사의 이런 주장이 성경적이며 옳다고 생각되는가? 김기동목사는 성경적인 지식도 없고 신학적인 뿌리가 전혀 없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상상하고 추측하여 황당한 교리를 만들어 그것을 베뢰아아카데미를 통하여 가르치고 있다. 이런 황당한 주장에 적지 않은 목사들도 미혹된다는 자체가 신기하기만 하다.

 

10) 방언이 장차 있을 사고나 비밀을 미리 알려준다는 주장

 

- 방언은 하나님께 하기 때문에 알아듣는 자가 없습니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합니다. 우리 영은 미래를 압니다. 우리는 한시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십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우리 마음은 과거부터 진행된 일과 현재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기도할 뿐 미래는 모릅니다. 내일 아침에 교통사고 날 것을 영은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영은 알기 때문에 영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영으로 하여금 이것을 피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나 우리 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악한 영들로부터 오는 시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은 미리 올 시험을 막고 장래 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해야만 합니다(베뢰아원강, 457)

 

도대체 이런 황당한 주장들은 어떤 성경을 근거로 하는가? 기가 막힌 정도를 넘어서서 차라리 슬프다. 사고를 미리 알려준다면 성락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지 않는가?

 

11) 기독교가 낙원을 부정한다는 김기동목사의 거짓말과 기독교에서 요한계시록을 계시록이라고 하지 않고 묵시록이라고 한다는 거짓말

 

- 기독교교리는 낙원을 부정합니다. 성경에 낙원이 있어도 낙원을 이야기하면 이단시합니다. 그들의 신앙고백의 교리가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천국 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지옥갔으니 다시 올라올 수 없기 때문에 불신자의 사후존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낙원에 있다가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인데, 교리주의자들은 낙원을 부인하고 믿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재림 때에 첫째 부활이 없다하여 첫째부활을 부인합니다. 첫째 부활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더라도 요한계시록을 계시록이라 하지 않고 묵시록이라 합니다. 요한 혼자만 본 묵시이므로 계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베뢰아원강, 715)

   

김기동목사는 기독교의 기초적인 교리조차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기독교가 낙원교리를 부정하는가? 기독교가 첫째부활을 주장하는가? 정말 웃음만 나온다.

기독교가 요한계시록을 계시록이라고 하지 않고 묵시록이라고 하는가?

 

12) 그리스도인은 낙원에 있고, 예수 이전의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게 된다는 주장

 

-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은 오두 믿는 자가 아버지 집에 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다.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이전까지 아브라함의 종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 즉 종의 신분을 가진 자가 머무는 곳이다(베아14,35). 아브라함의 품에는 믿음은 있으나 아직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간다. 율법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율법과 선지자의 권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는 복음을 믿는 자다.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자는 율법과 선지자에 속한 자이고 낙원은 복음으로 거듭난 자가 가는 곳이다(베아10,38) 그리스도인은 낙원에 가있고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자는 심판에 끝난 후에 비로소 하늘나라에 속하게 된다.(베뢰아원강, 718)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낙원에 있으며, 나사로가 있던 아브라함의 품이 낙원이라고 불려졌는가? 아브라함이 천국에 있다는 성경구절과 하나님나라에 있다는 성경구절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8:11)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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