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적할 상대는 사소한 방언문제가 아니다

  • 10월 21, 2015

                                    우리가 대적할 상대는 사소한 방언문제가 아니다.

  

                                                                                                                        이인규

 


일부 몇사람이 방언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비난을 하고 반대를 하고 있다. 그저 반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방언을 ‘사탄의 옹알거림’으로 맹비난을 하고 있으며, 방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비인격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까지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고 있다.

심지어 신사도운동과 두날개를 비판함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는 중요한 신학적인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방언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다.

필자도 방언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행해지는 지나친 은사남용주의를 비판하고 거부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한국교회의 적으로서 공격하여야만 할 대상은 방언 문제가 아니다

신사도운동의 문제점은 총체적으로 심각하며, 한국교회에 너무 넓게 깊게 퍼져 있다. 다행스럽게 그 문제점을 연구하며 조사하며 비판하는 학자들이나 목사들은 많이 있다. 그분들은 우리와 함께 신사도운동의 피해와 문제점에 대해서 걱정과 우려를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면서 그 대부분을 방언문제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비난을 하게되자, 오히려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는 사람들마저 그들에게 등을 돌리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는 사람들마저 적이 되어버리는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국교회 전체가 신사도운동과 대적을 하여도 어려운 상황인데, 이 몇몇 사람들이 촛점을 잃고 오직 방언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기 때문에, 신사도운동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므로서 동조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이러한 일때문에 서로 분열되는 경우가 실제로 있었고,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대적하여야할 상대가 누구인지를 분간조차 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들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이단을 대적하는 것이 중요한 촛점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적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문제점들을 부풀려서 반박하고 비난하기 시작하며, 자기만이 갖고 있는 특정한 신학과 교리가 아니면 무조건 이단시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고급스러운 표현으로는 교조주의,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보수골통이라고 부른다.


교회사를 보면, 중세 때에 바늘 귀에 귀신이 몇마리 앉을 수 있느냐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또  요한복음 8장8절에서 예수님이 땅에 쓴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성경적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이러한 내용을 논쟁하고 서로 비판하는 일이 도대체 왜 있었을까? 이러한 논쟁의 원인이 내 견해만이 옳다는 이기주의와 배타적인 우월주의 때문이다.  


방언은 성경에 기록된대로, 사도바울이 권면하는대로 하면 될 것이다.

사도바울은 교회에서 모든 은사는 덕을 세우기 위해 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방언은 무질서하게 하지 말고 둘 혹은 셋이 순서대로 할 것이며,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 14: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고전 14: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개역성경과 현대인의 성경은 적당하게 질서있게 하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고전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전 14: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