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에 대한 오해

  • 7월 11, 2016

                                              산상수훈에 대한 오해

 

                                                                                                                                                  이인규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5:27-28)

 

어떤 청년이 여자를 볼 때에 간혹 음욕이 든다고 하면서 자신은 간음죄라고 그것 때문에 번민을 한다고 말한다. 또 영화를 볼 때에 섹스씬이나 러브씬이 나오면 그것에 대해서 호기심이 드는데 간음죄가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죄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든다고 상담을 해온다. 이러한 문제는 이 청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산상수훈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산상수훈의 내용이 너무 높은 수준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해석에 대해서 몇가지의 견해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예수님의 구원관은 행위구원론적인 율법주의로서, 신약의 사도 특히 사도바울과 구원관과 견해가 다르다는 견해

(2) 지도자나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견해

(3) 천국에서의 삶을 뜻한다는 견해

(4) 산상수훈의 가르침 내용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사람의 노력과 의지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견해

(5) 산상수훈은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와 기준을 설정하여 주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는 견해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가르침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1)번을 우리가 수용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믿음을 강조했지만, 행함을 강조한 예수님의 견해가 옳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믿음을 강조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2)번의 주장은 51절의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는 구절에서 제자가 그 대상이었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5:11-16에서 대화가 2인칭으로 나타나는 점을 증거로 제시한다. 어떤 가르침의 교훈들, 특히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은 제자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2인칭으로 표현이 되었다고 하여 그 대상이 반드시 제자에게만 국한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산상수훈을 들었던 무리들은 제자에 국한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이 끝난 728절에는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라고 언급하며, 81절에는 예수가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라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3)번의 견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구절들은 세상에서의 고난과 핍박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가장 적합한 해석은 (4)번과 (5)번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해석이라고 본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를 우리는 산상수훈이라고 하는데, 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구원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산상수훈이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율법에서는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며, 라가라고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며,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신다. 본문에서 형제(아델포스)라는 단어는 오직 가족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같은 교회의 형제, 즉 교우에게 노한 적이 한번도 없으며, 욕을 한 적이 없는가? 형제에게 욕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계속 우리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른 눈이 실족하게 하면 눈을 뺄 수 있으며, 오른 손이 실족하게 하면 손을 찍어 내버릴 수 있는가? 더욱이 그렇게 하여야만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돌려댈 수 있는 기독교인은 과연 있으며,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할 수 있으며,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기독교인은 과연 있는가? 또 과연 그렇게 하여야만 지옥에 가지 않는가?

산상수훈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지키는가의 방법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추구하여야 하는가에 목표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보다 더 완전한 도덕성, 더 엄격한 윤리성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 산상수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나 행위구원론자가 되고 만다. 실제로 행위구원론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바로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멧세지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보다 더욱 심한 율법주의, 완전한 도덕성과 엄격한 윤리성, 도저히 지킬 수 없는 행위구원론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사실 이스라엘의 지도층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방법으로 율법을 지켜왔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구하는 율법은 내면적이며 실천적인 윤리가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툴룩이라는 신학자는 산상수훈은 천국의 대헌장이라고 하였고, 올스하우젠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교훈은 산상수훈의 주해였다라고 말하였으며, 브루스는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의 전 교훈의 요약이다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본문은 율법적인 기준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도덕성과 윤리성인 기준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수준을 말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절대적인 의의 기준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천상의 의에 대한 기준을 말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0-12)

 

산상수훈에 의하면 우리의 힘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산상수훈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여야 할 영적이며 윤리적인 본성(the spiritual and ethical nature)을 말한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가장 중요한 멧세지는 하나님나라의 도래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나라가 요구하는 온전한 의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같은 개념으로서 성경에서는 우리가 도저히 하나님의 거룩에 이룰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한다.(고후 7:1, 4:24, 벧전 1:16)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잘 언급하고 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방법밖에는 없으며,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며,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며,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산상수훈의 결론이며, 믿음에 의한 복음이다.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